역사 간직한 채 오늘을 숨쉬는 '왠지모를 익숙함' 선물
|
김안균 가옥 전경 |
일제강점기 시절의 전통적인 상류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조선 말기 양반가옥 형식을 기본으로 구조와 장식에 일본식 수법이 가미된 특징이 있다. 현대식처럼 거실과 침실을 구별했고 사랑채 가장 깊은 곳에 별도의 침실을 마련했다. 사랑채와 안채 앞뒤로 복도를 두르고 유리문을 달아 채광을 조절한 게 눈에 띈다.
사랑채는 팔작지붕으로 대청은 누마루 형식으로 정교한 아자(亞字) 난간을 둘렀다. 안채는 비교적 전통적 기법을 유지하고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만큼 우리나라의 전통적(傳統的)인 상류가옥이 이 무렵에 어떻게 변천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 아름다운 돌담길, ‘조해영 가옥’
|
|
건립 당시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곳간채 등을 비롯해 이 집안의 부를 이뤘던 여러 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주위의 토석 담장만이 남아 있다. 사랑채는 내부가 개조되어 1959년부터 원불교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안채는 입식부엌으로 개조하여 활용하는 안방 뒤쪽 공간을 제외하고 비교적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배원가옥은 함라면의 한옥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인근 조해영가옥, 김안균가옥과 토석 담장, 한옥 기와지붕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위 세 가옥의 주인들은 특이하게도 한 마을에 함께한 만석꾼들이다. 당대 우리나라에는 90여명의 만석꾼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 세명의 만석꾼이 작은 한마을에 모여 살았다는 것을 보면 옛 함라지역 명성과 풍요로움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본인들의 이익에 치중하지 않고 넉넉했던 수확만큼 동네 주민들에게 나눔을 실천한 함라의 삼부자들은 우리나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계층의 분화, 해체 이후 근대기 부농계층의 등장, 그 단면을 잘 보여주는 근대화된 부농가옥. 고택으로써 가지는 의미와 각각 세 가옥에 담긴 스토리텔링이 풍부해 역사적인 문화재로 활용가치가 크다.
또한 세 곳의 고택과 근처에 위치한 ‘함열 향교’, 현재 운영에 앞서 준비 중인 ‘함라 한옥체험관’이 어우러져 마을 전체가 한옥체험단지로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다만 현재 김안균 가옥은 개인 소유로 항시 개방이 되어있지 않아 내부관람은 어려우며 다른 가옥들 또한 관리가 더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띤다. 하지만 그 주변의 고즈넉한 담벼락 사이를 걸으며 한옥의 정취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조금 더 가꾸고 다듬어 우리지역의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관광지가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즐감하셨다면 추천 꼭 눌러주시고 아래 " 전원가고파 " 홈페이지 주소 클릭하시면
다양한 전원주택 사진, 설계도 ,시공 노하우와 전원생활, 귀농귀촌 정보가 있습니다
Daum부동산은 제휴 부동산정보업체가 제공하는 매물 정보와 기타 부동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로서,
제휴 업체의 매물 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 및 이와 관련한 거래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사 또는
글쓴이에 있으며, Kakao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