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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DIY] 농가를 개조하라 삶을 개조하라-시골집 리모델링 |
주말주택5도2촌동호회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1 | 조회 2076 | 2017.11.14 08:07 | 신고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싶어 충남서천에 농가주택을 2,500만원에 사서

 5100만원의 공사비를 포함해 총비용 7600만원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집을  마련하다

(리모델링사례1)

 폐가에 생명을 불어넣는 제주도의 폐가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주에서 옛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사례2)


투기꾼에게는 재테크의 수단이자 신분 상승의 사다리고, 유부남에게는 한번 나오면 들어가기 싫은 '집구석'이며, 주부들에겐 하면 표 안 나고 안 하면 표 나는 지긋지긋한 살림터인 집은, 1인 가구에겐 잠만 자는 '자취방'이거나 적막한 공간일 뿐이다. 결국 도시생활자에게 집이란 육신을 누일 거처와 다름없다.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는 괴테의 말은 도시인에게는 너무 먼 얘기인 것 같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 믿는 우리는 그래서 모두 '홈리스'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바람'

"집이란 그저 집일 뿐, 집이 내 인생을 일궈주는 밭이 된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못한 채 살았다. 기거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둘 여유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일상의 작은 일들을 무리무리 해결하며 살아가는 일은 이상하게도 늘 분주했으니까."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주부인 오미숙(46)씨도 일과 생활에 치여 정작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은 잊고 지냈다. 남의 집을 꾸며주는 일을 업으로 삼았지만 그건 단지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고단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가슴속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그날 이후 그 바람은 잦아들지 않고 소용돌이쳤다. 마당에 대한 바람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시골집으로 그를 데려다놓곤 했다. "몸집보다 더 큰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 수 있다고 설레발을 치곤 했던 일. 잠을 자다 어렴풋이 깼을 때 창호지문 너머로 어슴푸레 동이 트며 빛이 스며들던 것. 밤까지는 아무 일 없다가 눈뜨고 보니 나뭇가지가 휘도록 눈이 소복하게 쌓인 아침 같은 것."

추억은 윤색되기 마련이라지만, 그 시절의 풍경이 더없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은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넘어, 작은 행복을 선사해줄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도 컸다. 아니, 찾기가 어려웠다기보다 찾지 않으려 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줄곧 살던 아파트가 주는 편리와 쾌적함이 기꺼웠다고 그는 말했다.

"정신없이 일하면서 살다보니까 40대 후반인 거예요. 바쁜 게 자랑이었던 삶을 멈추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 느리게 살고 싶었어요." 사실 마당 있는 집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대다수 도시인들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다. "층층이, 겹겹이 쌓아올린 작은 아파트 한 채 갖는 일도 까마득한데, 흙과 꽃과 볕 드는 하늘까지 온전히 다 가진다는 게 참 맹랑하죠. 돈이 남아돌 정도로 풍족한 형편도 못 되면서 무슨 배짱이었는지 몰라요."

"도시에서는 텄다"고 여긴 그가 눈을 돌린 것은 시골의 농가주택. 3년 동안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부동산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발품을 팔아 둘러봤다. "몇 집을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비싼 거예요. 돈도 돈이지만 너무 큰 집이면 집을 누리는 게 아니라 집을 모시고 살 것 같아서 작은 시골집을 찾았죠. 그러다 올 초 충남 서천에 왔다가 이 집을 만났어요. 마루에 앉아 있는데 맘이 참 편한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보자 하고 돌아왔는데 이 집이 자꾸 생각났다던 그는 결국 지난 5월 2500만원에 덜컥 계약을 했다. 대지 100평에 건평 28평. 서까래와 기둥은 튼튼했지만 지은 지 70여 년은 족히 된 흙집을 내 집으로 고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약간은 겁없이 시작했어요. (웃음) 인테리어 공사는 많이 했지만 집을 개조하는 게 새로 짓는 것보다 힘들다는 걸 절감했죠."

읍내에 숙소를 잡고 장마 때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매일같이 인부 아저씨들의 밥을 해 나르다 하루가 저물었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들은 "뭐하는 겨? 허물고 새로 지어야지 그러면 안 되여~"라고 볼 때마다 지청구를 했다. 그러나 말복 무렵 공사가 끝났을 때, 그도 동네 사람들도 모두 놀랐다. 아궁이와 다락방, 부뚜막 등 한옥의 분위기와 구조는 그대로 살리면서 그 위에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를 얹은 작고 예쁜 시골집이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5100만원의 공사비를 포함해 총비용 7600만원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집을 얻었다. 그는 그 집을 '애플하우스'라 이름지었다.

나 홀로 고쳐가며 사는 '無何有之鄕'

그의 말처럼 집은 꿈을 일궈주는 밭이었을까. 올가을에는 이런 농가주택 개조 노하우와 뒷얘길 담아 생애 처음으로 <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 (포북 펴냄)라는 책도 펴냈다. 농가주택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책은 교보문고에서 분야별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그 탓에 잇따른 방송 출연과 강연으로 마당 있는 집에서 느리게 살고 싶다던 소망은 야속하게도 당분간 유예됐다. "시골 하면 펜션을 떠올리는 조카들에게 시골집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 좋아요. 무뚝뚝한 줄 알았던 친정엄마도 이 집에 오셔서는 몇 날 며칠 옛이야기를 풀어놓으시더라고요. 가족과 지인들에게 고향을 선물하게 된 것 같아 기쁘죠."

농가주택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살면서 조금씩 고쳐쓰는 것도 한 방편이다. 충남 보령의 전기수(69)씨는 환갑 무렵부터 시골생활을 궁리해왔다. 무역업에 종사하던 그는 도시생활에 찌들어갈 때마다 몸살 난 듯 시골을 그렸다. 안면도를 둘러보다 우연히 보령에 들른 2008년, 지금의 집을 보자마자 계약했다. 평당 15만원이던 주변 시세보다 3배나 더 비쌌지만 집 앞에서 작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 집만의 경치를 포기할 순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저보고 속았다고 했지만 이 동네 어디서도 이런 경관을 볼 수 있는 집이 없거든요. 그분들은 그걸 몰랐던 거죠. (웃음)" 그의 말마따나 집 앞 뜰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이 집의 택호가 왜 '無何有之鄕'(무하유지향·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세계)인지 알게 했다.

공사는 시나브로 시작됐다. 먼저 지금의 안방에 자리했던 부엌을 지금의 거실로 옮겼다. 배관과 싱크대 작업을 손수 했다. "따로 기술을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기술자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흉내 낸 거죠. 제가 원래 눈썰미가 좀 있는 편이거든요. 식당에 가서도 한번 먹어본 음식은 한 80% 정도까지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요. (웃음)"

농가주택을 빌려 사는 사람들

최근에는 부엌을 뒤로 확장하고 거실에 벽난로를 놓았다. 아일랜드 식탁은 직접 짰고 바 의자는 아들네가 안 쓰는 걸 가져왔다. 안목이 수준급이다. "TV 선반장도 제가 짰는데 잘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흉내만 내는 거죠. (웃음)" 연로한 나이에 손수 집을 고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시행착오도 많이 했고 혼자 하다보니 작업도 더뎠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놀면 뭐해요. 이게 취미생활인걸요. 손주들이 와서 불편하지 않아야 한 번이라도 더 내려오지 않겠어요? (웃음)" 그의 말마따나 집 고치는 일을 여가생활로 여기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그가 조금씩 홀로 집을 고친 데는 불가피한 사정도 있었다. 아직 현업을 떠나지 않은 그는 일 때문에 전면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시간이 맞아서 업자를 찾으면 그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품은 많이 들고 돈은 얼마 안 되는 시골집 개조 공사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었다. 실제 그는 외양간으로 쓰던 지금의 정자를 만들려고 읍내 업자를 수소문했으나 모두 거절해 몇 달에 걸쳐 혼자 해냈다. 동네에서 웬만한 건 다 고쳐준다는 그의 작업실은 그라인더부터 선반까지 전문가의 작업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각종 공구들로 가득했다. 새로운 공구가 나오면 사고 싶다는 상남자 전기수씨의 다음 공사 계획은 서재를 확장하는 것.

젊음의 열정으로 살아도, 황혼기에 홀로 지내는 시골생활이 적막하진 않을까. "집 고쳐야죠. 근처 바다에서 낚시해야죠. 남새밭 가꿔야죠. 일주일에 한 번 읍내 목욕탕 가서 호사도 누려야죠. 외로울 시간이 없어요. 할 게 너무 많거든요. 이번 김장도 새우젓 말고 산 게 없어요. 서울에 있는 자식들까지 시골에서 나는 걸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해요. 연금생활자 안 부럽죠." 자신의 집을 짓고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하는 일. 전인(全人)이 따로 없다.

굳이 집을 사야지만 시골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 아파트에서 살다 2005년 가족과 경기도 이천으로 이사를 온 고민숙(41)씨는, 농가주택을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집을 얻어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특별한 경우다. 남의 집이지만 살면서 불편한 점은 고쳐가면서 살고 있다. 도예가인 남편이 그토록 원했던 장작가마와 넓은 작업실을 만들었고, 자신을 위해선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공작소를 세웠다. 아이들과 나눌 일상의 행복은 마루를 고쳐 만든 '데크'에서 비롯됐다. 고민숙씨는 최근 이러한 시골생활의 이야기를 담아 < 시골낭만생활 > (청출판 펴냄)을 펴내기도 했다.

자연을 닮은 집에서라면

물론 조금씩 집을 고쳐쓰는 지난 8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더위와 싸우며 집과 작업장을 만들 때는 괜한 서러움과 두려움에 아이들 몰래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 번듯한 전원주택을 기대하고 왔다가 실망하고 가는 지인들 때문에 속상해한 적도 있었다. 집 안에 있어도 발이 얼 정도로 추운 겨울날은 보일러 기름값을 아끼려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자연이 위안을 해줬던 것 같아요. 마당 가득 예쁘게 홍단풍이 들거나 하얀 눈이 포근한 담요처럼 내려앉은 날이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부터 나왔어요. 문만 열면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선물에 감사했죠."

 

사람 사는 일이 어떻게 늘 햇살 들이치기만 하겠냐마는,

자연을 닮은 집에서라면 삶이 덜 바람 불고 쓸쓸할 것도 같다. 가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이 여기에 있다.

 

 

 

 

 

* 우리힘으로 만들어가고, 디자인을하고  함께짓고함께어울려 전원에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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