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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땅이야기] 무모함 으로 두 형제의 용감한 주택짓기
돌핀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0 | 조회 549 | 2018.07.23 06:48 | 신고

1억 5천만원에 지은 대가족이 사는 집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사돈끼리도 함께 산다고 나섰다. 두 젊은 부부는 자녀 계획도 있다. 그리고 집 지을 예산은 1억5천만원. 처음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무모함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용감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두 형제의 집짓기다.
일곱 식구가 함께 사는 집
용감한 주택에서 만난 용감한 형제, 주환 씨(위)와 영진 씨

11월이면 김주환, 김영진 씨 형제가 이곳에 둥지를 튼 지도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지금이야 '예쁘다, 대단하다, 살고 싶다' 같은 부러움 섞인 말을 듣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밤잠 못 이루고 눈물도 여러 번 쏟았다. 주환 씨 부부와 장모님, 영진 씨 부부 그리고 두 형제의 부모님 등 일곱 식구가 사는 이 용감한 주택은 그야말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고 완성되었다. 그런데 집이 지어지고 나니, 이 집만 보면 힘들었던 지난 일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지금, 가족에게 이곳은 밥이고 보약인 셈이다.

"당시 아버지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대전의 부모님 댁에 자주 내려가게 되었어요. 이대로 부모님과 따로 사는 것보다 근처에 모시고 자주 뵈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죠.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더욱 절실해졌던 것 같습니다."

 

박공의 천장은 높은 공간감과 아늑함을 함께 줄 수 있는 좋은 형태였다. 수납을 위해 큰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창고를 마당에 별동으로 만들었다.

 

가진 돈으로는 같이 살 마땅한 매물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형과 자금을 모아본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꺼낸 동생의 제안을 형은 흔쾌히 받아주었고, 덕분에 함께 사는 것을 전제로 여러 가지 대안을 계획해볼 수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집을 짓는 것. 예산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집을 짓는다는 생각 자체가 무모했지만 '어쩌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도전을 시작했다.SITE_ 법흥리 쪽을 지나던 중 무작정 들어간 부동산을 통해 땅 하나를 보았다. 매물로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북향이기 때문에 쉽게 거래가 이뤄지지 못한 곳이라 했다. 당시 부동산 부양에 대한 기대심리가 바닥이었고, 현금화가 어려운 전원주택보다는 아파트나 빌라 쪽으로 거래의 대부분이 기울어져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운 좋게도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땅의 가장 큰 이점은 토지공사에서 통일동산 택지로 개발을 해놓았던 대지였기 때문에 전기, 수도, 오수관, 도시가스 등이 매설이 되었던 상황이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동생 영진 씨가 총대를 멨다. 주택 건축과 관련된 서적과 사례를 찾아보면서 예산의 범위를 대략적으로 가늠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동산 토지매물 정보도 지속적으로 알아보았고, 직접 답사하며 건축주로서의 감을 익혔다. 그리고 주택 신축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건축과를 졸업한 선배의 소개로 준 아키텍츠(June architects) 김현석 소장을 만났다.

"예산이 너무 적은 상태였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설계를 부탁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시간을 내주셨는데 그냥 말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성의가 없을 것 같아 함께 살 가족구성원에 대한 소개부터 왜 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대략적인 예산, 짓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정리해 가져갔어요. 늦은 시간까지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눴고, 그 이후에도 자연스러운 만남이 계속 되었죠. 메일을 주고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가 언급한 말도 안 되는 일은, 이 집이 자꾸 눈에 밟혔던 김현석 소장이 결국 설계를 맡기로 한 것이다.

"처음 만나고 난 다음날부터 어떻게 하면 예산에 맞춰 지을 수 있을까란 생각뿐이었어요. 시작은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었죠."

건축가와 한 배를 타게 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산 넘어 산! 해결해야 할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족들과 건축가, 뒤늦게 합류한 시공자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문제를 차근히 풀어나갔다. 악조건 속 감히 따라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그간 그들의 노력은, 그렇게 3개월 후 가족에게 '집'이라는 큰 선물로 돌아왔다.

공사비 절감의 핵심이었던 구조적인 단순함이 잘 나타나는 외관

EXTERIOR_ 예산의 한계에 맞추어 모든 부분을 균등하게 질을 낮추는 것보다는 지금 잘 할 것과 나중에 잘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생활하는 내부공간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좋은 질로 만들고, 차후 생활하면서 조금씩 추가할 수 있는 외부는 현실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것으로 했다. 경사지붕과 외벽은 유로폼으로 만든 콘크리트 노출에 견출을 하였고, 향후 지붕의 누수나 외벽의 심각한 오염 등이 발생하면 추가적으로 마감을 하기로 했다. 구조의 효율성은 외피면적의 최소화와 함께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가장 처음부터 고려되었던 부분이다. 외벽 단열재는 규정치인 140㎜ 보다 두꺼운 두께 200㎜의 EPS를, 창호는 31㎜ 삼중로이유리에 PVC시스템 창호를 사용했다.

①거실 ②주방 ③주현관 ④복도 ⑤부현관 ⑥부모님 방 ⑦욕실 ⑧동생 부부 방 ⑨형 부부 방 ⑩가족실 ⑪장모님 방

INTERIOR_ 공사비 절감의 핵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적 단순함이다. 7명이 함께 있어도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위해 거실, 식당, 주방을 하나로 묶어 가장 넓고 높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대신 방 4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도록 했다. 내부에는 11.4×9.6m 최고높이 6m의 공간이 아무런 기둥이나 내력벽 없이 만들어졌다. 대신 내벽은 경량벽, 조적벽, 콘크리트 벽 등 무엇이든 예산에 맞추어 변경 가능하도록 했다. 층간에는 두께 180㎜의 콘크리트 슬래브, 55㎜의슬래브 상하부의 단열재, 50㎜의 시멘트모르타르, 10㎜의 강화마루로 층간 단열과 소음을 차단했다. 예산의 문제로 내단열을 사용했지만 최대한 그 한계를 극복하려 평면과 단면상에서 열교현상이 일어나는 곳은 분리시켰다. 또한 파주가 추운 지역임을 감안하여 전체적인 단열성능을 강화하였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주방의 상부장은 여러 가족의 주방용품 수납은 물론 거실의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하도록 했다.
두 형제와 영진 씨의 아내 민하 씨, 그리고 이 집의 설계를 용감하게 맡아준 김현석 소장


"희망, 이것만으로도 좋다"

2014년 5월 22일. 첫 만남이 있기 전, 건축주는 "무엇을 준비해 갈까요?"라고 물었고 난 '왜 집을 꼭 지어야만 하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29살의 건축주는 광화문의 한 중국집에서 첫 인사를 하자마자 A4 용지 일곱 장의 '우리가족 상황 브리핑'을 건넸다.

가진 돈은 전•월세 보증금 1억1천만원에 현금 약 1천만원. 이 돈으로 부모님, 큰아들 부부, 큰아들의 장모님, 작은아들 부부, 12살 된 개 해탈이가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마지막 방안이 이 돈으로 땅을 사고 대출을 받아 집을 짓는 것!

"3억원의 예산으로 땅을 사고 설계하고 공사하고 세금내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4세대 7명이 살 집. 한 세대가 11평 남짓한 공간을 가지게 되면 약 45평의 규모. 그런데 3억원 중 1억5천만원은 땅을 사는데 써야하고설계비, 공사비, 측량비, 인입비, 각종 경비에 세금까지 나머지 1억5천만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순수 공사비로만 약 1억1천만원~1억2천만원, 평당 250만원의 공사비라니…. 자신이 없었다. 설계비에 쓸 돈을 아껴서 몇 평이라도 넓은 집에 사는 것이 이 가족에게 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괜찮은 시공업체에 무료설계(?)를 맡기고 좀 더 넓은 집을 가지는 것이 어떨까요? 도면검토는 해드릴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함께 땅도 보러 갔지만 이 집을 설계한다는 것만큼은 두려웠다. 사실 처음 만난 다음날, 사무실에 와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초안은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공사비에 맞출 수 있는지 확신이 안 섰다. 한 달 가량 건축주에게 확답을 주지 못한 채, 여러 시공업체에 견적을 부탁했다. 대부분은 그런 작은 공사는 잘 안 할 뿐더러 실현 불가능하고 했다. 그러는 동안 건축주는 함께 보러 갔던 파주의 95평 땅을 덜컥 계약을 해버렸고, 결국 어떤 형태의 건물이건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예산에 맞추어 해보자고 약속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초안을 만들던 중 공사비 예산이 1억원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45평이면 평당 222만원의 공사비. 아니면 평당 250만원에 연면적 40평. 어떤 집이든 무조건 더 넓은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많고 짐도 많은데 좁은 곳에 부딪히며 살면 좋던 관계도 깨어질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건축주와 함께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집을 보러 다녔다. 콘크리트조로 하는 초안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경량철골구조에 샌드위치패널로 견적을 부탁했는데, 시공업체들은 기대를 벗어나는 답만 주었다. 경량철골조도, 목조도 다 어렵다고 했다. 남은 것도 없는 욕심을 더 쪼개어 줄인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비싼 설계비를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예산에 맞는 한 장짜리 견적서를 주었던 현장 인근의 업체가 다시 생각났다. 그 업체의 견적이 믿을만 한지 검증이 필요했다. 모든 재료의 물량을 뽑아내고 재료비, 노무비실행가를 알아내어 자체적으로 견적을 내어봤다. 불과 100~200만원 차이로 우리가 계산한 금액과 그 업체가 제시한 금액이 맞아떨어졌다. 해볼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로 시공업체에 연락을 해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일단 가장 걱정되는 지붕과 창호의 디테일, 단열과 결로방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밤늦도록 회의는 계속되었고 여전히 시공자의 눈빛은 빛났다. 믿을 만한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사비는 다시 최초의 계획처럼 1억1천만원~1억2천만원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의 품질은 물론 공사비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종들은 직접 제작업체에 찾아가 도면과 모형을 보여주며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최선의 협조를 구했다. 시스템창호 업체, 문 제작 업체, 싱크대 제작 업체, 가구 제작 업체 등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하려면 작은 실수도 없어야 했지만 모든 일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실수가 나면 재시공은 불가능했고 그 실수에 맞추어 다른 것들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재시공은 한두 가지 빼고는 없었다. 그래도 시공사는 예상치 않았던 많은 부분을 감당해내야 했다. 초중반까지도 설계, 감리자의 '간섭'을 못내 불편해 하던 시공사 사장님은 막바지에는 돈이 좀 더 들더라도 페인트 조색을 하자고 제안했다. 감동이었다.

이렇게 용감한 주택은 2014년 10월 4일 착공해, 눈 내리던 2015년 1월 18일 완공 잔치를 할 수 있었다.

동생 영진 씨 부부의 아늑한 침실
현관에서 바라본 복도. 형 주환 씨가 직접 만든 수납가구들이 내부와 잘 어우러진다. 맞은 편에는 장모님을 배려해 따로 출입구를 두었다.
깔끔하게 꾸민 부모님의 방
천창 덕분에 언제나 환한 집
2층 방 사이 작업공간
주환 씨의 장모님이 지내시는 방

1 FLOOR

주현관과 부현관을 'ㅡ'자 로 잇는 갤러리(복도)는 이 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1층의 모든 방(동생 영진 씨 부부와 부모님의 침실)과 거실, 주방, 욕실, 현관이 이곳에서 연결되며, 두 개의 통로는 거실을 순환형으로 만들어 공간을 흐르게 한다. 1층의 두 방 사이에는 욕실을 두고, 거실과는 갤러리를 통해 분리시켰다. 수납이 절실한 집이므로, 작은 물건을 수납하기 위해 길고 넓은 1층 복도를 활용한다.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에 창을 2개 이상 내어 맞통풍이 되도록 하였다.

2 FLOOR

2층에는 형 내외와 장모님의 각 방이 있다. 그리고 방 사이에는 작고 아담한 가족실이 위치한다. 현재는 형 주환 씨의 작업공간이지만 곧 태어날 아기의 놀이방이 될 예정이다. 이때가 되면 난간은 그물망으로 씌워 안전을 도모하기로 했다. 2층 방의 경사 벽에는 목문으로 창을 만들어 1층과 선택적 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이 경사 벽은 아이들의 미끄럼틀로 사용되어 공간의 역동성을 만들기도 한다. 추후 필요에 따라 선반을 계단식으로 두어 물건을 수납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많은 구성원이 함께 살고 있으니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 집에 들어올 때 이미 저희는 한 가족이었잖아요. 단지 개인이 하기 힘든 목표를 공동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루었다는 것뿐, 특별할 것도 없어요. 모두 같은 마음으로 뭉쳤기 때문에 현재에 잘 적응해가고 있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상황까지 걱정하며 굳이 걱정을 안고 살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집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고 가족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직도 얼떨떨해 하며 '이 집을 짓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주제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이 집의 소중함에 대해 서로 역설하며 격려하는 시간도 잦다. 이런 시간들과 대화가 앞으로 가족의 유대감을 높여주는 데 더욱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기분 좋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는 것에서 오는 기쁨, 시간이 흐를수록 이 공간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설렘, 그리고 이 집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일곱 식구의 용감한 주택은 오늘도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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