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숲을 이룬 마을 중턱, 목멱산과 인왕산이 바라다보여 이름 지어진 목인헌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그곳에는, 오늘도 다양한 풍경이 일상이 되어 공존한다.
지금의 이화동은 벽화마을로 더 많이 알려진 동네다. 이곳의 시공간은 지금도 1960년 정도쯤에 멈추어 있다. 2006년, 낙후된 마을 분위기를 바꾸려 시작한 공공디자인사업으로 낡고 퇴색한 마을의 골목과 담에 진한 화장이 입혀졌다. 예쁘라고 그린 형형색색의 그림들로 무엇을 감출 수 있을까? 이곳에는 그림으로 덮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었고, 산동네가 만든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 골목과 사람, 마을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생명력, 그것이 마을을 유지하는 힘이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시간의 마술이 다시 한 번 작동하면서 골목과 벽화도 어느덧 일상처럼 마을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요즈음은 이곳에 외국관광객까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추억을 남긴다). 뉴타운의 광풍이 불어 재개발 조합까지 결성된 이 마을에, 2012년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마을가꾸기에 나섰다. 주민과 함께 천천히 발전되어가는 마을,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마을, 현재의 골목 일상과 마을풍경이 유지되는 마을을 꿈꾸는 일이 시작되었다.
▲ 2층에 위치한 방
먼저 60여 년 동안 임의로 진행된 증축공간을 들어내고 1958년에 지었던 원형을 확인하고자 했다. 새것과 옛것의 표현, 즉 시간 표현을 위한 마감 재료와 색, 새로운 기능의 추가, 도시를 바라보는 경관, 마을을 구성하는 풍경인자로서의 자세와 대응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그것은 일상으로서의 풍경과 물리적 실체로서의 건축에 대한 표현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이며, 건축가로서 어느 정도의 깊이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였다. 마을의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마당이나 외부공간을 모두 증축하여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집 목인헌은 1층 30㎡, 2층 15㎡의 2층 구조에 단열 없이 6인치 블록 한 장으로 벽을 쌓고 ‘⊥’자형 지붕틀에 박공지붕이 올려져 있었다. 이화동 마을의 집들은 증축으로 외형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이 집은 초기에 지은 2층 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목인헌 내부는 1958년의 목재가 60여 년 인고의 시간 동안 나무 본연의 생물적 힘을 이기지 못하여 뒤틀리고 틈이 생기는 과정을 거치며 온순하고 어질게 되고, 이제는 얌전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다. 내부에 사용된 1950년대 생산되었던 시멘트블록의 벽체와 목재를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사용했던 목조지붕틀은 이 집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서구식 건축기술을 습득한 목수나 조적공의 기술은 단순하고 투박했으나, 천장 안의 지붕 목구조는 시간이라는 마술사 덕에 오히려 훌륭하고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목멱산(남산의 옛 이름)과 우측으로 인왕산, 그 사이의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목멱과 인왕이 보이는 집, ‘목인헌’이라 이름을 지었다. 아울러 이 집에는 젊음을 누르지 못했던 나무들이 뒤틀리고 갈라진 흔적으로 드러난다. 60여 년 전 껍질도 못 벗은 채 이곳에 와서, 콘크리트와 못에 강제되고 추위와 더위에 노출되어 온몸을 뒤틀며 힘으로 저항했던 나무. 그들이 60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어질대로 어질어져 있었다. 나무가 어질어진 집, 어진 나무의 집, 그래서 다시 한 번 ‘목인헌(木仁軒)’이라 불러본다. <글_ 이충기> 건축가 이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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