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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땅이야기] 전원주택, 은퇴자의 귀거래사 [1]
느티나무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1 | 조회 1455 | 2019.01.15 11:41 | 신고

전원주택, 은퇴자의 귀거래사

ㆍ귀촌자 집은 흙내음 물씬 나야 ‘전원별곡’

최호수씨가 퇴직한 뒤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 마을 어귀에 지은 전원주택. 흙다짐 벽이 드러나는 거실에 앉으면 켜켜이 다져올린 황토벽과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건너편의 산이 멋지게 어울린다. | 김재경 건축사진가

최호수씨가 퇴직한 뒤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 마을 어귀에 지은 전원주택. 흙다짐 벽이 드러나는 거실에 앉으면 켜켜이 다져올린 황토벽과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건너편의 산이 멋지게 어울린다. | 김재경 건축사진가

건축 일을 하며 여유가 있을 때마다 집 구경을 다닌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내가 꿈꾸는 집짓기’라는 이름의 시민 건축 공부 모임을 이끌면서부터 더욱 그렇다. 좋은 집을 꿈꾸기 위해서는 좋은 집을 많이 보는 것이 필수다.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내가 꿈꾸는 집’은 ‘내가 꿈꾸는 삶’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산수 간에 작은 집 하나 짓고 한가롭게 여유를 누리는 삶. 도시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간절해지는 꿈이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청복이 허락되는 건 아니다. 아이를 기르며 교육시키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꿈같은 일일 수 있다. 귀농을 하지 않는 한 전원에 집을 짓는 일은 은퇴 뒤에나 가능하다.

은퇴한 뒤 귀촌한 이가 지은 전원주택, 건축적 가치, 저비용, 편의성, 저에너지, 생태 친화성, 오랜 세월 꿈꾸며 준비한 끝에 지었으되 웬만한 사람이면 따라 지을 수 있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집에서 살고 있는 건축주의 만족도…. 도시만 벗어나면 널린 게 주택이지만 은퇴자 전원주택에서 ‘내가 꿈꾸는 집짓기’의 모범 답안을 찾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았다. 수십 곳의 집을 저울질하다 택한 곳이 멀리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 최호수(61), 변갑순(59)씨 부부가 지어 사는 집이었다. 집을 지은 지 상당한 연륜이 쌓이며 여러 가지가 검증된 집으로 오랜 직장 동료인 조요곤(63), 최성순(59)씨 부부와 나란히 집을 지어 귀촌했다고 했다.


■ 배산임수 지형에 순응한 배치

최씨는 경북 포항시 포항제철에서 30년 근속하다 퇴직했다. 퇴직하던 2006년 말, 인비리 마을 어귀에 집을 지었다. 운주산(806m) 자락에 기댄 마을 앞에 기계천이 펼쳐진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동남쪽 산 너머 골짜기엔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독락당(獨樂堂)이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 그래도 포항 시내까지 20분, 대구 시내까지 40분이면 닿는다.

인비리는 암각화가 새겨진 고인돌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마을. 집은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초입에 있었다. 지붕에 태양광 집열판을 얹은 비슷한 형태의 흙집 2채, 두 집 사이로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최씨 부부의 집은 동향, 조씨 부부의 집은 남향이다. 두 집에서 같은 조망을 보지 않도록 지형에 순응한 배치다. 흙다짐 벽으로 세운 황톳빛 담장이 멀리서 보기에도 정겨웠다. 마을의 첫 집으로 두 흙집과 담장은 마을의 대문 격이다. 집을 설계한 공간연구소 ‘알콘(AltCon)’ 이규봉 소장은 이 집을 찾기 전 서울에서 미리 만난 자리에서 건축 배치도와 평면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마을의 집들이 제각각이어서 마을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이 집이 마을 어귀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집을 길 양쪽으로 낮게 배치하고 흙 담장을 만들어 집이 마을 풍경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운주산 풍경에 거슬리지 않도록 지붕도 수평으로 설계했습니다.”

이 소장은 1997년부터 10년 동안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의 사무실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제천 간디학교 기숙사, 무주 천문과학관, 제주·순천·진해 등지에서 기적의 도서관 건축에 참여했다. 인비리 주택은 이 소장이 당시 흙건축연구소 ‘아키떼르’를 만들어 독립한 직후 건축한 작품이다. 이 집에서도 정기용 선생의 흙집 작품인 춘천 ‘자두나무집’ 분위기가 배어 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인상 좋은 건축주 최씨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방문객을 반겼다. 마당 왼쪽의 넓은 포도밭 너머로 운주산이, 오른쪽으로 도로 건너에 기계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은 30평 규모의 짜임새 있는 공간이었다. 현관문 정면 뒤쪽으로 또 다른 출입문을 만들어 앞뒤로 나다닐 수 있게 했다. 오른쪽으로 짧은 복도를 지나니 황톳빛 흙다짐 벽이 드러난 거실이 나왔다. 맞은 편 넓은 창은 기계천 너머 부드러운 산을 향해 넓게 열려 있었다. 거실에 앉으니 켜켜이 다져 올린 황토벽과 창으로 들어오는 산이 멋지게 어울렸다. 거실엔 소파나 장식장, 식탁 같은 가구가 없었다. 부인 변씨는 “집이 낮으니 좌식생활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가구가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가구처럼 눈에 거슬리는 것을 없애고 빈 공간을 누리는 것이 더 즐겁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사연으로 이 집을 짓게 되었을까.


■ 운주산에 반해 잡은 집터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전원생활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은 부인 변씨였다. 최씨도 시골을 좋아했다. 50대 중반에 일찌감치 퇴직한 뒤 재취업도 해 보았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나이 들면서 아내에게 우울증이 생겼어요. 시간 날 때마다 텃밭을 일구며 시골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러면서 주로 서울 근교 청평과 양평 등지에 있는 집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전원주택 짓기는 터 잡기가 우선이다. 마을 바깥 농지나 임야를 사서 택지를 만드느냐, 기존의 마을로 들어가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양자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안정성에서는 기존의 마을이 있는 곳이 더 낫다. 그러나 기존 마을에 들어 갈 경우 폐쇄된 농촌 마을의 텃새를 감안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적잖은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지으면서 외딴 곳에 택지를 새롭게 만든다. 그러나 자연에 깃든다면서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해 택지를 만드는 것도 문제다.

최씨는 퇴직 전, 지인의 초청으로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가 병풍처럼 펼쳐진 운주산의 운무에 매료됐다. 그때 마음을 정하고 바로 이 땅을 구입했다. 이곳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땅이어서 편했다. 대구, 포항에 산재한 병원과도 가까웠다. 이미 외지 사람이 마을에 먼저 들어와 살고 있어서 텃새도 없었다.

터를 결정했으니 규모를 정해야 했다. 집 규모는 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찾아오는 자녀들의 방을 따로 만들지, 손님을 치르자면 방은 몇 개나 있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러나 노부부 둘이 살 때는 집이 지나치게 클 필요가 없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집짓기가 필요하다. 욕심내면 병이 된다.

최씨 집은 대지 201평에 건평 30평이다. 평면은 좀 다르지만 대지와 건평은 이웃 조씨 집도 똑 같다.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 부엌, 다용도실, 처마가 있는 데크 정도다. 김장할 때면 자녀들과 손자녀 등 20~30명 정도가 모인다. 그래도 남자들은 거실에서 자고 여자들은 방에서 자니 충분하다. 최씨는 “나이 들어 부부가 단 둘이 살면서 큰 집이 필요 없다”며 “오히려 집이 작으니 손님이 오면 북적이는 맛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집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벽들도 흙다짐 공법으로 쌓아올려 벽이 기둥 역할을 하도록 했다.

집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벽들도 흙다짐 공법으로 쌓아올려 벽이 기둥 역할을 하도록 했다.


■ 흙다짐 벽으로 지은 작은집

재료는 진작부터 흙으로 결정했다. 건축주 최씨는 오래 전부터 흙집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다. 건축설계는 이규봉 소장이, 흙다짐 벽 컨설팅은 고 신근식 박사가 맡았다. 얼마 전 요절한 신 박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을 흙다짐 벽으로 시공한 국내 최고의 흙다짐 벽 전문가. 신 박사는 흙 건축의 물리 화학적 연구와 설계, 시공을 동시에 하기 위해 이 소장과 함께 ‘아키떼르’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개설했다. 조성룡 선생이 흙다짐 벽으로 설계한 충남 예산의 ‘이응노의 집’과 고 정기용 선생이 설계한 강원 춘천의 ‘자두나무집’ 다짐 벽 공사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흙다짐 벽으로 지방에서 작은 집 하나를 지어서는 타산을 맞출 수 없었다. 적어도 두 채는 지어야 했다. 건축주 최씨가 직장 동료인 조씨와 나란히 집을 지은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집 설계에 3개월, 시공에는 6개월이 걸렸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자주 만나며 수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설계를 변경했다. 시공을 할 땐 당시 ‘아키떼르’ 이여주 실장이 인비리 현장에 상주했다. 인근에는 흙다짐 벽으로 쓸 만한 좋은 흙이 없어 50㎞ 떨어진 칠곡에서 흙을 구했다. 칠곡 흙은 재질과 색깔이 좋으면서도 크랙 따위의 하자가 없었다.

양쪽 벽과 집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H자 형태의 벽을 흙다짐으로 쌓아올려 벽이 기둥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나머지 벽은 자유롭게 변화를 줄 수 있는 흙벽돌로 쌓아올렸다. 그 흙벽 위에 철골을 놓고 데크 플레이트로 지붕을 얹었다. 바닥은 본드가 많이 들어가는 원목 마루판 대신 장판지로 했다. 이렇게 집을 지어 입주한 것이 2006년 12월, 총 건축비는 1억200만원(조경비 2000만원은 별도)으로 평당 400만원이 소요됐다.

집을 완공한 뒤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상계형 계량기를 설치해 남는 전기가 있으면 한전으로 보내고 부족한 전기는 한전에서 받는 형태다. 난방은 심야 전기보일러를 쓴다. 이렇게 하다 보니 한겨울 전기 사용료가 월 25만원에 이르나 여름에는 전기료가 거의 없다.

“흙집에서 느끼는 쾌적함이 참 좋아요. 여름에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면서도 한겨울에 차갑지 않습니다. 몇 년 지난 집 특유의 냄새는 물론이고 벌레도 거의 없습니다.”

부인 변씨는 “비 오는 날 소나무와 흙벽의 선명한 조화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최씨는 “전문가가 지은 집이라는 자부심으로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려 애쓴다”며 “좋은 집을 지으려면 좋은 집을 많이 보고 전문 건축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반딧불이가 날아드는 마당

집 지은 지 2~3년은 손님을 치르느라 바빴다. 맨 처음 마당은 정신이 없었다. 잔디를 심었으나 잡초가 더 무성했다. 제초제를 쓰는 대신 풀을 일일이 손으로 뽑았다. 마당에는 일부러 조명을 밝게 하지 않았다. 부인 변씨는 “낮은 조명 덕분에 여름밤엔 반딧불이 별처럼 날아든다”며 자랑했다. 집 뒤 텃밭에는 갖은 채소와 과일을 심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제철 과일, 제철 채소를 먹는 즐거움은 크다. 농사지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된장을 담근다. 두부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앞산, 뒷산에서는 산나물과 버섯도 풍성하게 난다. 마을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마을 토박이들에게 토속음식을 배우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함께 나눈다. 어찌 보면 그리 늙지도 않은 나이에 귀촌한 최씨 부부를 보고 친구들이 간혹 묻는다. 시골로 내려온 뒤 후회하지 않느냐, 답답하고 불편하지 않느냐. 그때마다 그는 분명하게 답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풍성하다. 이젠 정말, 도시에서는, 아파트에서는 못 살 것 같다.”


▲ 흙다짐 벽집과 흙벽돌 집 차이

흙은 건축이 산업화되면서 사라져 버린 재료 중 하나다. 그러나 흙집은 온화하고 포근하며 생명력이 있다. 습도와 온도 조절이 뛰어나고 통풍과 탈취, 정화력이 있어 건강에 좋다. 축열이 가능해 난방비도 절약된다. 그러나 습기에 약한 것이 단점이다.

같은 흙집이라도 흙다짐 벽집은 흙벽돌 집보다 견고하고 아름답다. 또한 흙다짐 공법은 재료로 흙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나무를 사용하는 목구조 공법이나 콘크리트 구조 공법과 다르다.

요즘 목구조 집은 규격화한 부재들을 이용해 벽을 만든다. 프라모델을 만들 듯 나무와 단열재를 세우고 끼우고 조립한 뒤 칠하면 되므로 공사기간이 예전보다 현저하게 줄었다.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건축주가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융통성마저 겸비했다. 나무의 열전도율이 낮아 단열에도 좋다. 그러나 습기에 약해 나무가 썩기 쉬운 데다 바닥과 벽의 가볍고 비어 있는 듯한 재질감이 문제다. 철근 콘크리트 집은 거푸집을 설치하고 철근을 배치한 뒤 레미콘을 타설하고 양생하는 것으로 구조가 완성된다. 이렇게 설치된 구조체에 단열재를 설치한 뒤 마감재를 붙이거나 쌓아올리는 것으로 집이 된다. 그러나 콘크리트 집은 차갑고 반생태적인 것이 단점이다.

흙다짐 벽은 거푸집을 설치하고 다짐기로 흙을 켜켜이 쌓아가며 구조체 겸 벽을 세우는 공법을 쓴다. 흙벽돌을 쌓아올리는 공법에 비해 견고하고 에너지 효율이 좋으나 시공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흙다짐 벽은 좋은 흙과 정확한 시공이 중요하다. 비가 오거나 영하의 날씨에는 전혀 공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날씨에도 민감하다. 두께 40㎝, 높이 2.5m가량의 흙다짐 벽 시공비가 1m당 40만원가량으로 싼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목구조 집이나 콘크리트 집에 필요한 단열재와 마감재 설치 공사가 필요 없이 흙다짐 벽을 완성하는 것으로 집이 되므로, 결과적으로 비용은 비슷해진다.


흙다짐 벽은 전부가 아니라도 일부 활용하면 전원주택에 유용하다. 인비리 주택을 설계한 이규봉 소장은 “흙다짐 벽은 단열보다 축열에 뛰어나 남쪽에 세우면 에너지 효율이 좋다”고 말했다. 겨울철 낮에 벽에서 받은 열을 밤에 실내로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정상철 | 대안연구공동체 건축학교 교장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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