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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무엇으로 짓는가?
건축주 집짓기 수기 1탄
내 집을 짓는 건 무척이나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다. 이 따끈따끈한 도전을 시작한 애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자 편집부의 문을 노크했다.
+ 상상을 부르는 집집 설계 때문에 현장 사무실에 주말마다 간다. 협소주택 규모의 집이라 제약이 많다. 게다가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재정 또한 우리의 상상을 구속한다. 실내는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지만 주택의 기존 프레임은 이미 정해져 있다. 시간도 부족하고 금전적 여유도 없는 지금, 셀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기엔 여의치 않으므로 기존 모델하우스 바탕 위에서 상상하는 것은 어쩌면 효율적인 면도 있다. 내가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이유는 ‘상상’이, 앞으로 살아갈 우리 인생살이에 다양하고 재미난 ‘상상’이 마구마구 일어나는 까닭이다. ‘옥수수를 심어볼까, 상추를 심어 볼까? 고구마를 심는 것도 좋겠네. 뜰 한쪽에 빗물 저장고를 만들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 애들(아직은 없지만)하고 물총 싸움도 하고, 고무 튜브로 작은 물놀이장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뜰에 심은 소나무에 크리스마스 장식도 달고. 볕 좋은 날 테라스에서 아내와 마주하고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재미도 새로울 테고......’ + 『전원속의 내집』, 구석에 처박히다아내는 전원주택에 사는 걸 반대했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그 자체가 무섭기도 하니. 더더구나 단독주택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고, 나를 만나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주거 형태니까. 그런 아내를 3년 가까이 설득해 주말이면 나들이를 겸해 타운하우스를 구경 다녔다. 분양 소식을 따라 용인이든 광주든 찾아가서 모델하우스도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관심은 자연스레 집짓기에 관련된 책으로 옮겨 급기야 작년에는 『전원속의 내집』 정기구독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아내에게 집을 짓자고, 타운하우스로 가서 살자고 강력하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냥 보여주고, 상상할 수 있게 하고, 낯설음을 조금씩 줄여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언젠가부터 아내가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월세로 살고 있는데, 올해 7월 말이 계약 만기다. 틈날 때마다 아내는 부동산 시세를 알아본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여력으로는 아파트 전세를 얻는 것조차 빠듯하다. 집 문제에 대해서 아내와 내가 의견을 나눌 때면 결론이 없어 늘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그러기를 몇 개월째, 어느 순간 『전원속의 내집』은 방 한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 봄, 싹이 트다, 가슴에 우리 집 싹이봄. 싱싱한 생명력을 맘껏 뿜어내는 나무 가지마다 파아란 새순들. 이들이 만발하여 눈부시도록 상쾌하게 산이 빛나는 봄. 아내와 나는 또 타운하우스 탐방을 나선다. 작년에 한 번 방문했던 반디나비였다. ‘작은 땅에 작은 집’ 나에게 반디나비는 이렇게 각인되었다. 작년에는 별 감흥이 없던 아내가 올해는 다르다. 다녀온 후에 자꾸 여운이 남는다고. 아마도 부동산 시세를 알아본 이후 찾아온 실망감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몇 주 전 대안으로 봤던 복층 빌라의 만만치 않은 가격도 거들었을 터. 이날 이후 반디나비 현장을 아내와 함께 두세 번 더 찾았다. 마침내 아내와 나는 결단을 내렸다, 여기에 살 집을 마련하기로. 결정 이후는 빠르게 진행이 되어 4월 초에 계약을 했다. 7월 말까지 설계하고 건축까지 마무리하기에 시간이 빠듯하다. + 『전원속의 내집』, 다시 환영 받다우리가 살고 싶은, 살려고(to live) 하는 집은 ‘작은 집’이다. 대지 60평. 자연녹지라 건폐율이 20%. 따라서 건축면적은 12평. 2층으로 지어도 건축 연면적은 24평 정도에 불과하다. ‘작은 집’을 짓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보이드(Void) 공간이다. 1층과 2층은 각각 독립되고 단절된 공간이다. 하지만 1층 거실의 천장 일부를 뻥 뚫으면 1층과 2층은 소통할 수 있다. 단절된 평면구조가 아닌 소통할 수 있는 입체적인 공간이 되어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은 집이라 한 평이 아쉽지만 역설적으로 더더욱 보이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기존 모델하우스는, 1층은 주방과 거실, 2층은 2개의 방과 선택사항으로 다락을 5~10평 정도 만들어 옥상을 베란다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작은 집에 보이드를 넣자니 2층의 방 1개가 없어진다. 달랑 방 하나. 작은 집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머리가 아프다. 보이드, 열린 공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아내와 나는 처박아 둔 『전원속의 내집』을 전부 다시 꺼내 펼쳤다. 이 순간 이 책이 집에 한 뭉치 쌓여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갑던지. 작은 집, 큰 집 가릴 거 없이 소개된 집들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그러기를 며칠, 벌써 첫 설계 미팅 날짜가 되었다. 아내와 나는 보이드를 확보하는 대가로 안락한 계단을 포기하기로 했다.
+ 계단, 계단, 계단원래는 가로세로 1,800×2,200㎜ 공간에 계단을 온전히 따로 두었다. 중간에 한 번 꺾는 계단으로, 계단 밑 공간은 보일러실 등으로 계획된 설계였다. 우리는 처음 보이드를 구상할 때 기존과 달리 거실에 계단을 두기로 했다. 올라가는 방향이 바뀌는 꺾는 계단이 아니라 한 번에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한 번에 올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다른 대안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왜냐면 기존 계단 공간을 작은 방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비록 작을지라도 기도실이나 명상실로 쓰기엔 충분할 거 같았다. 이제 2층에서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치를 정해야 한다. 위치를 이리 저리 옮겨 보지만 계단 때문에 작은 공간이 나뉘어져서 쓸모없는 공간이 계속 생긴다. 또 머리가 아프다. 모델하우스의 도면을 프린터 해서 『전원속의 내집』에 나온 집들과 비교하며 수없이 줄을 그었다. 도면을 몇 장이나 출력하고, 거기에 선은 얼마나 그었을까? 다음 미팅까지 하루를 남겨둔 저녁,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직사각형의 중간을 가로질러 계단을 놓자는. 그러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과 동선도 이어지고, 다락의 위치도 괜찮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의 방과 거실을 구분 짓는 경계 역할도 할 수 있을 듯했다. 경사는 더 가파르겠지만, 다락 올라가는 계단이야 가팔라야 제 맛이고. 이 생각을 설계 담당자에게 전했을 때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 1공간 1기능설계자가 많이 힘들어 한다. 안 그래도 작은 공간에 보이드를 넣겠다고 하니. 아내가 한 마디를 거든다. “1층은 주방과 식당으로만 쓰고, 2층을 가족실(거실)로 이용하려구요.” 순간 두통이 사라지며 머리가 단순해졌다. 이때 설계자의 얼굴에서 두 번째 미소를 보았다. 그렇다. 작은 공간에 여러 기능을 부여하지 말고, 하나의 공간에 하나의 역할을 부여하자. 설계담당자도 공간의 쓰임에 대해서 우리가 선을 그어 주니까 모처럼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여러 가지 조언들을 보탠다. 이를 바탕으로 설계담당자가 도면을 정리해서 메일을 보내주기로 하고 다음 미팅 날짜를 잡았다. + 집은 무엇으로 짓는가주중에 설계자가 도면을 이메일로 보내오면 아내와 함께 열심히 도면에다 생각을 정리해 보낸다. 이후 설계자가 다시 그 내용을 반영해서 도면을 보내온다. 이처럼 메일을 주고받는 작업을 수차례 거듭했다. 미팅 전 날, 메일이 도착했다. ‘어디가 달라졌지? 훨씬 깔끔하다. 어... 어디가 달라졌지? 각각의 공간들이 정돈되고 그 쓰임이 살아났다. 한 참을 뚫어져라 도면을 쳐다본다. 도대체 어디가 달라졌지?’ 기존 모델하우스는 4,500×7,650㎜였는데, 이를 4,300×8,050㎜으로 바꾼 것이었다. 짧은 변을 200㎜ 더 줄이고, 긴 변을 400㎜ 더 늘렸다. 이 작은 변화가 공간에 숨을 불어넣었다. 기존 건축사이즈를 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지, 변경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하는 순간 설계자의 세 번째 미소를 볼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면 신의 뜻을 거슬러 인간으로 지내는 천사가 신의 뜻을 이해하고는 세 번 웃는다. 우리의 처음(어쩌면 마지막일) 집짓기도 이렇게 설계자의 세 번의 미소로 설계의 종지부를 찍었다.(다음 호에 계속...) 글_조영진(건축주)
구성_이세정 출처 월간 전원속의 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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