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흐름 따라 지은 멋스러운 목조한옥
집 꾸밈을 보면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고 살림살이를 보면 안주인의 솜씨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강원 홍천군 서면 모곡리, 외진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띄는 농가주택이 한 채 있다. 평생 농사지으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온 심무섭 씨의 집이다. 높은 기와 탓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고 가까이 가보면 아담한 외관이 더 정겨운 심씨의 목조 한옥에는 어떤 꿈들이 깃들어 있을까.
아침부터 내리는 장맛비로 취재할 수 있을지 망설이다가 길을 나섰다. 가면서도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에 마음이 무거워 다시 전화를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기도 하잖아요. 맑은 날의 집 정경도 좋지만 비오는 날의 분위기도 또 다르답니다. 한번 들렀다 간다 생각하고 걱정하지 말고 오세요.” 심무섭 씨(74)의 말이 맞았다.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며 보니 멀리 기와지붕이 먼저 눈인사를 한다. 높이 솟은 기와와 달리 막상 도착한 집은 아담한 한옥이다. 포도나무 넝쿨을 아치형으로 꾸며 만든 입구에서 보이는 비 오는 날의 한옥은 심씨의 말처럼 또 다른 운치를 드러낸다.
[건강에 좋은 개성 있는 집 꿈꾸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977년 홍천으로 귀농한 심씨는 1984년 이곳에 왔다. 처음에는 풍광이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 잡았다. 당시 축산업을 했는데 수해로 큰 피해를 보면서 높은 지대를 찾아온 곳이 현재의 집터다. 이곳은 당시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단다.
1990년 농촌마다 관광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즈음 그 역시 전국을 다닐 기회가 많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됐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을 눈여겨보게 되더란다. 농가 주택인데도 너무 모양에만 치중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많은 집도 있었고 너무 편의성에만 중점을 두어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한 곳도 보면서 그는 언젠가는 가족에게 꼭 맞는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심씨는 언젠가 집을 지을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택 관련 잡지를 구독하는가 하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다른 이들이 사는 집도 둘러보곤 했다.
오? 기간 생각한 끝에 그가 짓기로 한 집은 ‘건강한 집’으로, 황토를 이용한 목조한옥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모양새에만 치중하는 게 안타까워요. 전국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한옥이 불편한 점은 있지만, 자연과 가장 어울리고 농촌에서 생활하기에 좋다는 생각을 해왔지요.” 처음 집을 지은 때는 2003년. 별채로 사용하고 있는 입구의 통나무 흙담집이다. 지금은 친지들이 왔을 때 주로 묵는 이곳은 부부가 직접 지었다. 벽 두께만 45㎝다. 한 해 겨울을 나고 보니 집을 짓는 데 자신감이 생겼고 이왕이면 오랜 세월 버틸 수 있는 ?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채를 짓게 됐다.
지금의 집은 2005년에 지었다. 집 짓는 데에 들어가는 자재를 준비하는 데에 걸린 기간만 2년이다.
예산을 정해놓고 건강한 집을 짓기 위해 자재는 직접 준비했다. 흙벽돌 만드는 공장을 방문해 벽돌을 만들때 빨리 응고되도록 응결제를 쓰는 것을 보고는 직접 농사지은 볏짚을 썰어 가져다주고 응결제 대신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벽돌도 광물질이 함유된 세라믹 흙으로 만들었다. 그만큼 비용이 더 들었지만 대신 다른 비용을 아끼려고 나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폐자재를 활용했다. 산?청에서 간벌하는 나무를 비용을 주고 인수해 2년 동안 모았다. 부부가 함께 농한기를 이용해 서까래 하나하나를 직접 깎을 정도로 자재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황토를 이용한 목조 건물이다 보니 나무와 흙의 수축이 달라 틈이 생기는 것을 자주 봤기에 기둥마다 2㎝ 크기로 홈을 파서 바깥 벽돌은 홈 속으로 집어넣었다. 외벽 마감도 황토에 규사 성분을 섞은 다음 덮어 2주 정도 발효시켜 사용해 균열이 거의 없다는 게 심씨의 설명. 심씨는 집을 지으면서 자연조건을 최대한 고려했다.
“집을 지으려고 보니까 이곳이 지역에서 수맥이 ?장 강한 곳이더라고요. 수맥을 차단하려고 옥광산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구해 참숯과 섞어 물로 굳히고 욕실을 제외한 모든 곳에 까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도 신경을 썼어요.” 서북풍이 심하게 부는 지역이라 집 구조를 ‘ㄱ’자 형태로 했다. 찬바람이 불면 모서리를 치면서 바람이 퍼지도록 하는 원리를 활용한 것.
심씨는 농가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난방이라는 생각으로 지붕 단열에도 신경을 썼다. 지붕 루버 위에 물을 차단하는 부직포를 깔아 황토를 20㎝ 두께로 쌓고 그 위에 공간을 두고 지붕을 올렸다. 바깥에서 보면 지붕?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천장에 이중 공간을 둔 덕분에 열 손실이 적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단다. 현재 난방은 지열로 하고 전기는 태양광 발전으로 사용해 전기요금도 최대한 줄였다.
한옥이라고 하면 불편한 집으로 생각되지만 심씨는 내부 구조도 생활하기 편리하게 신경을 썼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땀을 흘려 자주 씻어야 하기 때문에 욕실도 널찍하게 했다. 현관에 들어서 왼편 작은방과 욕실이 있는 복도를 지나면 오른편에 있는 주방은 집 규모와 비교하면 조금 좁은 듯하다. 하지만 주방과 연결된 다용도실이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시골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게 각종 곡식과 물건을 넣어두는 광인데 심씨는 다용도실을 광처럼 사용할 수 있게 넓게 만들었다. 다용도실에서도 조리할 수 있게 싱크대를 설치해 주방 역할을 하면서 시골 살림살이들을 수납하도록 해 활용도를 높였다. 바깥을 향하는 벽 전체에 창을 내 홍천강 쪽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일을 할 수 있게 한 점도 눈에 띈다.
본채 주변에는 데크를 설치했다가 난방을 위해 새시를 설치했다. 이 때문에 겨울철에는 설치 전보다 평균 3~4℃가 차이나 난방비 절약에도 큰 도움이 된다.
취재 내내 어디선가 향긋한 향이 난다 싶었더니 집 주변이 꽃 천지다. 갖가지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고 본채 앞의 정원과 주변에는 다양한 약초와 야생 화초류가 자란다. 미선나무, 구상나무, 주목을 비롯해 귀한 식물들이 멸종되는 게 안타까운 그가 40년간 살면서 형질이 좋은 것을 선발해 심고 재배하고 있는 것.
[가장 좋은 집은 내가 가장 원하는 집] 심씨의 집은 지대가 높고 지붕이 솟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홍천강과 밤벌유원지가 있어 여름이면 휴가 왔다가 호기심에 들러 집을 구경하고 싶다는 이들도 부?기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인사를 하며 지내기 어려운 요즘, 지나는 이들의 약속하지 않은 방문이 귀찮을 법도 하건만 심씨는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사람이 사는 집에 사람이 찾아와야 하지 않느냐며 반기는 눈치다. 집을 찾은 낯선 방문객에도 시원한 음료수까지 대접하며 집을 개방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한 집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전원주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그동안은 은퇴를 앞둔 중년 부부가 많이 왔는데 요즘은 젊은 부부도 많이 들러요. 귀농, 귀촌을 하려는 이들도 많고 가족의 집을 직접 짓고 싶은 꿈을 가진 이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집을 짓기 전의 자신처럼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이들일지도 모르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심씨는 집을 방문하는 이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꼼꼼하게 설명해준다. 주로 그가 하는 조언은 집은 지으려는 사람의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 심씨가 건강하면서 개성 있는 집을 짓고 싶어 했듯이 가족의 생활에 맞는 자신만의 집을 지어보라고 말한다. ‘가장 좋은 집은 사는 사람이 가장 원하는 집’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렇듯 자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자면 건축비가 많이 들지 않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역에 있는 자재를 활용해 많이 줄일 수 있었단다. 집을 찾아와 둘러보는 이들에게 심씨가 잊지 않고 하는 말은 형편에 맞춰 얼마든지 자신만의 집을 지을 수 있으니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집은 저와 가족이 생활했던 공간이에요. 저희 부부가 없을 때에도 사람들이 헐어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도록 제대로 짓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집이 한 세대에 끝나지 않고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집을 지은 지 올해로 12년째. 집주인의 너그러운 마음처럼 그의 집 또한 세월이 흐를수록 주변과 어우러져 더 멋스러워졌다. 앞으로 주변의 나무는 더 울창해지고, 꽃은 자라갈수록 더욱 짙은 향기를 뿜어낼 것이다. 그만큼의 세월 동안 심무섭 씨의 집도 더 많은 이야기와 추억들을 쌓아갈게다.
[전원주택 지을 때 비용 아끼려면] 누구나 한 번쯤 전원주택을 꿈꾼다. 하지만 만만찮은 비용에 엄두를 못 내는 것도 사실이다. 아담하면서도 멋스러운 심무섭 씨의 목조한옥. 건강을 생각해 자재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지만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가 들려주는 전원주택 짓기 <적정 예산에 맞춰 짓는다 >집을 지으면서 준비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해 비용을 들이는 것은 금물. 반드시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예산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방안을 고민하라는 게 심씨의 조언이다. 고민을 하다 보면 반드시 답은 나온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를 활용하자 >심씨는 산림청에서 간벌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비용을 내고 싼 가격에 나무를 사들였다. 대신 2년 가까운 기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집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고.
<재활? 자재도 쓰임새에 따라 요긴하다 > 본채를 둘러가며 설치한 데크. 이곳에 공장 건축물에 사용했다가 철거하게 된 자재로 새시를 했더니 멋스러운 공간이 됐다. 주변에 버려지는 자재가 있다면 한 번쯤 고민해봐도 좋을 듯
출처 농민신문 글 이인아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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