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거나 고리타분하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한옥의 멋을 살리고 현대적 감각을 더해 특별함으로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손길을 통해 21세기의 한옥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아울러 한옥 양식 속에서 이탤리언 요리와 퓨전 요리를 내며 색다른 분위기를 전하는 이색 공간과 멋스러운 모던 한식 그릇을 사랑하는 이들의 그릇 이야기도 들어봤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하게 떠오른 한국의 멋, 지금부터 함께 느껴보자.
Part 1 한옥의 아름다움을 담은 공간에 살다
양식의 편리함과 결합한 한옥의 아늑함
얇은 창호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외풍과 건물 밖으로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떠올리며 한옥은 막연히 불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한옥의 장점을 외면한 편견이다. 근래 들어 한옥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더욱 늘고 있는데, 외관은 전통적인 한옥일지라도 내부는 양식 건물의 장점을 도입해 설계하는 추세다. 한옥의 아늑함에 양식의 실용성이 더해져 의외로 살기 편하다는 것이 실거주자들의 경험담. 툇마루가 있던 자리는 거실로 활용하며, 서까래 아래 소파를 두어 가족과 휴식을 취하고, 앞마당은 정원이 돼 집주인의 취향과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식이다. 서울 삼청로나 북촌로에 즐비한 한옥의 경우도 전통적인 한옥 외관과 양식의 생활 방식을 접목해 편리하면서도 살기 좋은 현대적 주택으로서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편 양식 건물 안에 한옥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한 건물도 있다. 경기도 판교 신도시 점포주택지 중 한 필지에 자리 잡은 지노하우스가 바로 그러한 곳이다. 외관만 보면 디자인에 신경 쓴 모던한 건물 정도의 인상을 주지만, 내부에 한국 전통의 미와 구조를 담아 예술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지노하우스를 설계한 필립건축사사무소 이기옥 소장이 주거지로 사용하고 있다. 한옥의 개념을 도입해 2층은 별채와 사랑채, 3층은 안채의 성격을 담았는데, 현대적인 구조에 전통 양식을 접목한 아이디어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안채 격인 집안으로 들어가는 복도의 비스듬한 경사 지붕은 한옥의 들보를 상징하며, 툇마루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만들어 다과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응접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1 지노하우스의 3층으로 올라가는 실내 계단이 있는 현관. 시야가 탁 트이게 디자인해 개방성을 지닌 한옥 구조의 특징을 살렸다. 2 바느질 작가 우영미 대표가 아틀리에로 사용하고 있는 규방도감. 탁 트인 앞마당을 중심으로 개방형으로 지어졌다. 마루에 오래된 툇마루의 나무로 만든 테이블을 놓아 거실 겸 식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3 규방도감 우영미 대표는 무명천으로 만든 커튼을 달고, 침대에는 화려한 색감의 무명 이불을 놓아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에 한식을 접목했다.
실내로 들어가려면 한옥에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댓돌에 신발을 벗고 툇마루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 아파트나 일반 사무실 등 현대적 건물에 한옥 양식을 접목할 때 일반적으로 전통 창살이나 나무 마루 등으로 한옥 스타일을 연출했다면, 지노하우스는 댓돌과 툇마루 등을 통해 전통적인 수직 이동 방식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공간과 물건
철저하게 상가주택으로 지어진 지노하우스는 한옥을 연상시키는 내부 구조와 더불어 안동에서 1백 년 이상 된 고택의 툇마루를 가져와 평상을 만드는 등 적재적소에 배치된 가구와 소품이 빚어내는 모던한 인테리어가 그 멋을 더한다. 오래된 나무로 만든 가구는 사람이 사용할수록 나뭇결에서 반질반질 윤이 나는데, 고택의 툇마루를 틀어 만든 테이블은 투박하면서도 편안한 느낌 덕분에 아파트와 사무실 등 어느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 바느질 작가 우영미 대표가 운영하는 규방도감의 대여섯 개 되는 테이블도 모두 고택의 툇마루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우 대표는 한식의 멋을 많은 이들과 공감하기 위해 아틀리에에서 사용하던 가구를 원하는 사람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1 규방도감의 아틀리에는 침실, 거실, 서재, 사랑방 4개의 컨셉트로 꾸며졌다. 손님을 위한 사랑방에는 좌식 테이블을 놓아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2·3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일 녹슨 재봉틀과 각기 다른 디자인의 항아리, 기왓장 하나도 한옥 공간에서는 특별한 소품으로써 가치가 있다.
한편 한국적인 공간에서는 모던한 디자인의 트렌디한 가구를 들여도 멋스러우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래된 물건도 세월과 추억을 담은 보물로 변신한다. 한옥 마당에 있는 장을 담은 항아리들이 그렇고, 오래된 놋쇠 화로도 인테리어를 돋보이게 하는 소품이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가 운영하는 모우리스튜디오는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에 현대적 감성을 더한 곳으로 유명하다. 모던한 가구로 생활의 편리함을 꾀하고, 어려서부터 모아온 오래된 물건을 곳곳에 두어 나만의 박물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1 지노하우스의 2층 사랑채가 시작되는 공간. 현대식 신발장과 함께 작은 마당과 댓돌, 마루를 두어 진입 공간을 전통 한옥처럼 연출했다. 2·4 마루방을 중심으로 안마당, 사랑방, 현관과 연결되는 출입구 부분은 모두 전통 창호를 이용해 자유롭게 개폐할 수 있도록 했다. 3 현재 임대 공간으로 활용 중인 별채. 한옥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공간의 높낮이를 달리했다.
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도시의 빌딩 숲에서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전해주는 것 또한 한옥의 장점이다. 생활 방식은 현대식에 맞추되 외관은 한옥의 특징을 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눈 내리는 겨울, 밤새 마당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볼 수 있는 것은 한옥의 특권인 것이다.
Part 2 전통의 멋을 담은 한옥 레스토랑을 찾다한옥에 모던함을 더한 공간, 까델루뽀
서울 서촌의 한 주택가 골목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이탤리언 레스토랑 까델루뽀. 간판이 없었다면 한옥 가정집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정도로 아담한 공간이다.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ㄷ'자의 전통 한옥 구조가 펼쳐지는데, 중앙에 자리 잡은 마당은 시골집에 온 듯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곳은 한옥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오픈한 공간으로 테이블이 있는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반전이 이루어진다. 전통 한옥 외형과 달리 모던한 테이블과 서양식 테이블웨어가 세팅돼 있기 때문.
1 전체적으로 브라운톤으로 연출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쪽에 걸려 있는 그림과 소파는 현대적인 느낌을 풍긴다. 2 대문을 지나면 아늑만 마당이 펼쳐진다. 3 전통적인 느낌의 그릇에 와인 병을 담아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2008년에 오픈한 까델루뽀는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독특한 컨셉트의 인테리어로도 유명하다. 오너셰프인 이재훈 대표는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형 식당에서 셰프로 근무했다. 항상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을 만나다 보니 자신이 마치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져 손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가게를 열고 싶었고, 아담한 가게를 찾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지금의 한옥을 만났다. 평소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곳을 본 순간 멋스러움에 반해 바로 결정을 하고 레스토랑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제가 레스토랑 오픈 준비를 하며 가장 신경 쓴 것은 한옥 그대로의 모습과 그 안에 담긴 멋을 살리는 것이었죠. 사실 한옥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테리어가 되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원래 주택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기로 했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이기에 인테리어에는 크게 변화를 두지 않았다. 벽지를 한옥과 잘 어울리는 느낌의 한지로 교체하고 테이블만 다시 들여놓은 정도. 마당의 나무 하나까지도 그대로 두어 편안한 분위기의 이색 공간인 이탤리언 한옥 레스토랑을 완성했다.영업시간 월~토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평일 오후 3~6시 브레이크 타임, 일요일 휴무)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6길 5-5 문의 02-734-5233
감각적인 한옥 레스토랑, 스미스가 좋아하는 한옥
레스토랑 이름만 들으면 외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곳 같지만 스미스는 손님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손님들이 좋아하는 한옥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송종섭 대표가 직접 지었다. 이곳은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1명인 나용환 독립운동가가 살던 곳이다. 처음에는 주거용으로 구입했으나 막상 한옥에서 살려고 하니 막막하고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몇 년을 관리만 하며 두다가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쓰기 위해 레스토랑 오픈을 결심했다. 그러고는 어떤 음식을 판매할까 고민하다 '한옥에서의 한식'이라는 식상한 공식에서 벗어나 색다른 분위기의 이탤리언 요리를 선보이기로 했다.
1 여백의 미를 살린 내부 공간. 2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두 채로 나뉘어 있다. 마당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직접 자갈을 깔고 푸른 식물을 심어서 넓고 시원한 느낌을 강조했다. 3 구조적인 디자인의 화이트 컬러 가구들과 한옥의 조화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오픈 준비를 하며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전체적으로 한옥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고 가구나 조명 등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었어요. 소품은 심플하면서 현대적인 느낌으로 골라 한옥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다른 매력을 더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했죠."
이곳은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공존한다. 그 예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한옥 두 채 중 카페로 이용되는 작은 공간.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고 새장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조명이 달려 있는데, 창이 따로 열리지 않는 공간의 특성을 배려해 시원해 보이도록 큼지막한 소품을 배치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공간이나 벽면에 여백을 많이 둬 손님들이 한옥 고유의 멋을 즐기도록 했다.영업시간 평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주말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평일 오후 3~5시 브레이크 타임)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7문의 02-722-7003
근대적 주거 양식을 접목한 개량 한옥, 민가다헌
민가다헌은 개량 한옥의 원조인 민병옥 대감의 저택을 개조해 만든 곳이다. 민병옥가는 서울시 민속 문화재 15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곳으로, 당시 한옥 개량 운동을 펼친 그답게 전통 한옥에 1930년대의 근대적 주거 양식을 접목했다. 모든 방들을 집약된 'H'자형 평면으로 설계하고, 대청을 한 칸 규모로 과감하게 축소했다. 화장실과 목욕탕이 실내로 들어온 것도 이때부터로, 일자로 이어진 복도식 공간이 독특하다.
1 현대적인 테이블 세팅과 화려한 샹들리에로 멋스럽게 연출한 공간. 2 창밖으로 보이는 대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3 마당의 나무 테이블에서는 간단한 차를 즐기기에 좋다.
민가다헌을 오픈하면서는 동서양의 만남을 컨셉트로 근대적인 한옥의 느낌을 살렸다. 1930년대 우리나라에 지어진 양식풍 한옥을 모토로 그 시대의 가구와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한 것. 때문에 단아한 한옥의 느낌보다는 화려하면서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특히 방마다 느낌이 다른데, 바로크 양식의 가구들로 조선 개화기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문화재를 활성화한 곳이 많지 않은데, 외국에서는 고택 등을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재탄생시켜 여러 사람과 공간을 나누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람들이 문화재를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죠. 민가다헌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오픈 멤버인 신용철 매니저는 한옥의 매력으로 정서적 안정감을 꼽았다. 손님들도 한옥에서 편안함과 푸근함을 느끼지만 직원들도 탁 트인 한옥 공간에서 일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옥의 편안함을 느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영업시간 정오~오후 11시(평일 오후 4~6시 브레이크 타임) 주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3-9문의 02-733-2966
다시 찾은 한옥의 포근함, 팝 스테이크
정성수 오너셰프는 스테이크, 파스타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차리기 위해 마땅한 공간을 찾던 중 한옥 가정집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 가정집이 주는 포근한 이미지 덕에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적당한 한옥을 알아보던 차에 지금의 장소를 만났다.
1 심플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으로 바닥에 온돌을 깔아 한옥의 특성을 살렸다.2 전통적인 소품과 유럽풍 가구가 공존하는 팝 스테이크 내부.3 전통 한옥 분위기의 공간과 모던한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4 마당을 연상시키기 위해 중앙에 큼직한 화분을 두었다.
"제가 이곳 혜화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거든요. 어린 시절, 이곳에 사람들이 살 때부터 많이 봐왔죠. 팝 스테이크 이전에는 카페였는데, 계약을 위해 둘러보니 제가 봤던 어린 시절 한옥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어요. 매장을 오픈하며 한옥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으려 많은 노력을 했죠."
한쪽이 막혀 있어 답답해 보이던 공간을 뚫어서 한옥의 널찍한 모습을 살리고, 막혀 있던 서까래 또한 잘 보이게 고쳐 한옥의 특징을 살렸다. 평소 언밸런스한 매력을 좋아하는 그는 전체적인 느낌은 한옥의 고전미를 살리되 유럽 스타일의 가구를 배치해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조명은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도록 간접등을 설치해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매장에 놓인 탁자와 의자는 모두 가게 컨셉트에 맞게 정성수 대표가 직접 페인팅한 것. 이동 중에 깨진 항아리도 한국적인 느낌이 멋스러워 버리지 않고 그대로 장식했다. 이곳저곳에 장식해놓은 독특한 소품은 모두 직접 스타일링한 것으로 레스토랑 곳곳에서 한국의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진다.영업시간 화~일요일 정오~오후 10시(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 종로구 대학로14길 18문의 02-766-1110
Part 3 한식 전문가의 모던한 한식 그릇 예찬따스하게 감싸는 포용력을 지닌 백자 by 김영빈(요리연구가)
보통의 여자들이 갖고 싶은 백이 있으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데, 그릇 욕심이 많은 나는 예쁜 그릇을 보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렇게 하나둘 구입한 그릇들은 어느새 집 안에 가득 차고 넘쳐 이제는 애물단지 아닌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항상 멈추지 못하고 구입하는 것이 바로 백자다. 예쁜 액세서리가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주듯 어떤 음식을 담아도 정갈하고 맛있게 보이도록 해주는 것이 백자의 매력이다. 아이러니하게 그릇 자체가 무척 아름다우면 음식을 담았을 때 음식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데, 백자는 모든 음식을 수용하는 포용력이 있다. 그 매력은 그릇장에서도 돋보여 꼭 세트를 맞추지 않아도 백자끼리 조화를 이루며 구색을 맞춰준다.
가지고 있는 백자 중 가장 아끼는 연잎 백자는 촬영하면서 알게 된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 선생이 선물해주신 것이다. 이 그릇은 촬영할 때보다 평소에 더 많이 사용하는데, 보통 아이들과 간식을 즐길 때 꺼내곤 한다. 얼마 전 아이들 간식으로 떡 케이크를 만들어 연잎 백자에 담았다. 단아한 아름다움의 연잎 백자와 선명한 색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활짝 핀 한 송이 꽃을 연상시켰다. 백자 소반과 참외 모양의 찻잔 세트 또한 아끼는 백자 중 하나다. 명지대학교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작업하는 1260이라는 브랜드에서 구입한 것으로 정갈한 느낌이 좋아 차를 마실 때 꺼내 분위기를 내곤 한다. 특히 꽃을 동동 띄운 연잎차를 담아 마시면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 즐겨 사용한다.
고급스럽고 중후한 멋이 담긴 분청과 유기 by 김민지(민스키친 오너 셰프)
새로운 요리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 음식을 어떤 그릇에 담아야 좋을지도 생각한다. 나에게 그릇에 담기지 않은 요리는 미완성일 뿐이다. 때문에 시간이 날 때면 이천 그릇가게에 들러 작가들이 만든 그릇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모던한 한식기를 직접 디자인해 주문하기도 한다. 검정 유약을 바른 분청 원형 접시도 주문 제작한 것으로 투박한 질감과 색감이 무척 마음에 든다. 사실 같은 디자인으로 광택감이 있는 흰색 접시를 먼저 사용하고 있었는데, 검정 분청 접시는 매트하게 만들었다. 접시 색감이 주는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쇠고기 찹쌀구이와 무척 잘 어울린다. 간장으로 양념한 쇠고기 갈빗살에 찹쌀가루를 발라 구운 요리로 겨자소스와 깻잎 향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면기로 디자인된 유기도 애착이 많이 가는 그릇 중 하나. 전통 방식의 유기는 무겁고 관리가 까다로우며 밥과 국그릇, 크기별 찬그릇 정도만 나온다. 한식을 유기에 모두 내면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어 수저 정도만 유기 제품을 썼는데, 어느 날 가볍고 관리가 쉬운 실용적인 유기 면기를 발견하고는 바로 구입했다. 이 유기 면기에는 칼로리가 없는 곤약으로 만든 김치말이 곤약국수를 담아 코스 마지막 요리에 내놓는다. 이 그릇 역시 유기가 주는 고급스러움이 무척 매력적인데, 처음 보는 독특한 재질 때문에 외국인 손님에게 특히 인기다. 유기 면기는 손님들의 문의를 가장 많이 받는 제품이기도 하다. 관리가 쉬울 뿐 아니라 깨질 염려가 없어 집에 두고 사용하기에도 좋다.
투박하고 거칠어 더욱 아름다운 청자 by 조성호(해밀 레스토랑 셰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식을 먹고 자라겠지만, 나는 특히나 어머니가 한식 요리연구가라 우리나라의 맛과 멋에 대해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다.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는 어머니의 한식 노하우와 나의 주방 경험을 합쳐 모던한 감각의 한식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돼 호주 식당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와 어머니와 한식당 '해밀'을 오픈하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꿈꾸던 레스토랑이기에 그릇 하나도 아무것이나 쓸 수 없었다. 이천의 그릇가게들을 돌던 중 한 가게에서 마음에 쏙 드는 그릇을 발견하고는 주문 제작해 지금까지 레스토랑에서 사용하고 있다.
메뉴마다 특색에 맞는 여러 그릇을 사용하는데, 다양한 그릇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릇은 바로 청자다. 청자는 투박한 질감이 멋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며 우아한 멋까지 느껴진다. 두툼한 두께 때문에 음식의 온기를 오래 유지해주는 것도 청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요즘 한식의 세계화라고 해서 함께 먹는 방식이 아닌 1인 기준으로 음식을 세팅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한식에서 나눔과 어울림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한 그릇에 3인분 이상의 음식을 담아낸다. 보통 동그란 그릇에 떡갈비를 세팅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다란 청자 그릇에 담아내면 플레이팅마저 색다르게 느껴진다. 특별한 고명을 얹기보다 화이트소스만 곁들여 음식과 그릇이 주는 정갈함이 느껴지도록 표현한다. 투박함마저 멋스럽게 느껴지는 청자야말로 한식을 가장 글로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식기라고 생각한다.
도자기 결이 바다를 연상시키는 원형 접시 by 김병진(비채나 레스토랑 셰프)
중식과 양식을 요리하다 한식을 시작할 무렵, 음식을 '한국적인 것'으로 표현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채나는 한식기 회사인 광주요에서 운영하는 한식 레스토랑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식기를 디자인 개발팀에 요청할 수 있어 식기 선택이 자유로웠다. 또 가장 글로벌하고 이국적인 동네인 이태원로에 위치하다 보니 형식의 틀을 깬 분위기의 한식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모던한 한식기로 비채나의 음식을 채우기 시작했다.
비채나가 갖고 있는 수많은 그릇 가운데 평평한 원형 그릇을 가장 애용하고 있다. 광주요 전속 작가 도명 김대용씨가 만든 작품인 '결' 시리즈 중 하나인 원형 편접시로, 약간은 거칠면서도 투박한 결의 질감이 백사장과 바다의 이미지로 다가와 매력적이다. 움푹한 그릇에 음식을 담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한식에 어울리지 않는 접시지만, 국적 불문하고 플랫하게 세팅하는 음식과 모두 잘 어울린다. 굽이 없는 접시라 테이블 매트로도 활용 가능해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생선구이나 만두, 지짐 등을 담아도 예쁜데, 얼마 전 개발한 요리를 올렸더니 그릇이 음식의 맛을 더욱 살려줘 만족스럽다. 그 주인공은 강원도 별미인 오징어순대를 응용한 요리인 오징어순대 다시말이찜이다. 오징어를 젓갈과 조림, 찜으로 만들어 3가지 맛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비채나의 신메뉴로, 음식의 화려한 색감이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식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음식을 맛으로만 먹던 시대는 지났다. 그릇에 음식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맛의 시너지가 무한대로 커지는 듯하다.
출처 레이디경향 <■진행 / 이서연·김자혜 기자 ■사진 / 김성구, 김정원, 안지영 ■사진 제공 / 윤준환(필립종합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