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기획] ‘작은 집 살기’ 두 번째 이야기, 공간 개조… 살뜰한 쓰임새의 공간을 얻고 짓누르던 짐을 덜어내며 위안을 얻었네
살아 있는 집에 살다
» 포복 제공
» 구가도시건축 제공
» 공간 재구성으로 면적 이상의 쓰임새를 얻은 작은 집들. 위부터 서울 강남의 15평대 아파트, 가회동의 한옥, 삼청동 한옥. 구가도시건축 제공, 사진 박영채
지금이야 집값이 강을 따라 나뉘지만 예전엔 한데 섞여 있었나 보다. 차 한 대 지나기 어려운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좁은 골목길엔 큰 집과 작은 집이 엮여 있다. 꼬불한 길을 지나 더 좁은 골목 안쪽, 들창이 커다란 집이 눈에 꽂힌다. 69.2㎡(21평)의 좁은 땅에 지은 36.36㎡(11평) 넓이의 작은 한옥은 얼마 전 이상헌·한지수씨 부부가 집들이를 마친 집이다. 분당의 105.8㎡(32평) 아파트와 맞바꾼 집이기도 하다.
디귿(ㄷ) 자 모양의 한옥에선 한편으론 부부침실과 대청마루가 이어져 있고, 다른 한편으론 아이방과 사랑방이 나란하다. 유형건씨네 집은 이사하며 부모의 공간과 아이의 공간이 서로 마주 보도록 했다. 부모와 자식은 부엌에서 만난다. 아파트에선 아이는 방문을 잠그고, 부모는 아예 문손잡이를 떼며 싸웠다. 이사하며 서로의 공간을 존중했더니 돌연 사이가 좋아졌다. 아이의 사춘기 이후 처음 맞는 평화란다. 작은 한옥이지만 이 집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다양하고 극적이다. 빛이 머리 위 창문으로 들어오는 어두운 방, 하늘이 보이는 화장실, 밝고 따뜻한 마루, 서까래 밑 다락방에다 부엌은 마당으로 드나들기 좋게 낮고 마루는 높다. 사랑방 창문들도 높이가 같지 않다. 빛이 들어오는 창은 높고, 내다보고 참견하는 창은 낮다. 창문이라고 다 같은 창이 아니다. 지나는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따로 있고, 집주인이 내다보고 이야기하는 창문이 따로 있다.
» 작은 집의 얼굴은 다정하고 다양하다. 서울 삼청동 한옥으로 들어서는 입구. 구가도시건축 제공, 사진 박영채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신경옥씨는 “작은 집은 궁리하고 모험하기 좋은 곳”이라는 작은 집 예찬론을 편다. 신씨는 33.1∼66.1㎡(10~20평)의 집을 고치고 다듬은 이야기를 모아 지난해 말 <작은 집이 좋아>라는 책을 냈다. 한 공간을 여러 가지 쓰임새로 고치고 사람과 살림이 엉키지 않고 단정한 모양새로 바꾸다 보면 복잡하고 어수선했던 집이 다정하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란다. “큰 집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작은 집은 노동과 생각을 요구한다. 작은 손길에도 집이 확 달라지는 덕분에 작은 집은 고치는 보람이 더 크다”는 게 신씨의 주장이다. 공동주택에서 적은 예산으로 집안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서울 강북의 방 2개짜리 작은 빌라를 고치며 방문을 모두 떼어버렸다. 안방은 거실로, 거실은 식당으로 바꿨더니 집이 넓어졌다. 서울 대치동의 49.6㎡(15평) 아파트는 부엌 싱크대를 베란다로 옮겼다. 전셋집이어서 확장할 수 없는 형편이라 거실 문틀과 문짝만 뗐지만 효과는 컸다. 좁은 아파트에 식탁을 두고도 여유 있는 거실이 나왔다.
굳이 집을 고치지 않아도 지을 때부터 작은 집의 미덕을 살릴 수는 없을까. 2년 전부터 대형 주택 시장이 가라앉고 오피스텔이 뜨자 초소형 공동주택의 화두는 ‘숨은 수납’이다. 우미건설은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 오피스텔을 분양하며 ‘수납증대 다락형 오피스텔 평면’을 선보였다. 이전부터 다락형 오피스텔이나 복층형 소형 주택이 있었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우미건설 설계팀 송영준 대리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잘 쓰지는 않지만 큰 짐들이 있다. 잘 쓰지 않는 욕실 윗부분에 이 짐을 두도록 공간을 활용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 전 세대의 천장 높이를 일반 오피스텔보다 40cm 높은 2.8m로 만들고 높아진 공간에 상부장과 붙박이장을 설치해 수납공간을 두도록 했다”고 말했다. 송 대리는 건설사들의 오피스텔 수납공간 개발 경쟁을 ‘mm 전쟁’이라고 부른다. 1mm라도 줄이려는 건설사들의 설계 싸움은 3D 입체형이다. 다락형 수납공간을 만들려면 위층 욕실을 줄이고 맞춰야 한다. 모델하우스를 열 때까지 모든 아이디어는 극비다. 다락형 오피스텔은 저작권 등록을 했다. 집과 함께 제공되는 빌트인 가구도 개발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접이식 식탁이 잘 팔리자 최근에는 한 건설사가 빨래건조대를 수납장에 숨기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신경옥씨가 말하는 작은 집 꾸미기
공간을 숨 쉬게 하라
1. 우리 집의 문제점을 적어보자 당장 해결해야 할 것들의 순위를 적은 뒤, 되도록 세세하게 해결 방안을 정리한다.
2. 버려야 할 살림과 꼭 필요한 살림을 나눠라 계획을 세워 한 공간씩 살림 덜어내기를 해보면 그것만으로도 공간이 숨을 쉰다.
3.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라 거실을 꾸밀 때 남들 다 있는 살림살이를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4. 우리 집에 어울리는 스타일은 따로 있다. 지금 갖고 있는 살림을 무시하지 마라. 비슷한 살림으로 엮어내야 어울리는 공간이 나온다.
5. 남의 손에 맡길까, 말까 집꾸밈 정보가 많아서 대부분의 일들은 직접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신중하게 판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