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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땅이야기] [귀농사례] 다양한 색깔의 여러가지 귀농이야기
전꿈사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3 | 조회 3734 | 2013.01.30 00:02 | 신고

‘자발적 가난’과 거리가 먼 3040 고학력자

고학력자나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 출신 귀농자들이 많아졌다. IMF 이후 부쩍 늘었던 생계형 귀농과 2000년대 유행한 은퇴 귀농자의 전원생활 바람이 잠잠해진 반면, 3040세대 젊은 엘리트들의 귀농이 부쩍 늘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수년간 50대 귀농 인구가 18.9%, 60대 이상은 9.8%를 기록한 반면, 40대는 28.3%, 30대는 무려 36.4%에 달했다. 지난 4월 정부가 ‘귀농귀촌종합대책’을 발표한 후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조직적 귀농 준비와 시골살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도시 출신 엘리트들이 모여 사는 케이스도 많아졌다. 전북 장수의 ‘하늘소마을 ’과 경북 봉화의 ‘비나리마을 ’, 전북 진안의 ‘새울터마을 ’은 고학력 귀농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표적인 귀농 공동체다. 이들은 귀농 준비 단계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시골살이에 더 쉽게 적응한다. 최근 지자체들이 관내 인구 증가를 목표로 적극적인 귀농 지원 정책을 펴면서 생긴 새로운 추세다.

농촌에 살면서 재능을 기부한다

고학력 귀농자들은 다양한 생활 패턴을 갖고 있다. 물론 농사도 짓지만 땅만 일구며 사는 건 아니다. 지자체에서 귀농자들을 사회복지사나 촉탁 교사, 마을 간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생활 경험이 풍부하니 한 명은 농사를 짓고 한 명은 부업하는 새로운 형태의 맞벌이(?)도 등장한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을에 보급하거나 폐교를 개조해 미술관으로 만드는 등 마을 발전에 힘쓰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농사짓고 싶어서 ‘귀농’한 것이 아니라 시골에 살기 위해 ‘귀촌’했다”고 말한다.

귀농지는 연고보다 실리가 우선

1세대 귀농자들은 주로 고향 근처 마을을 물색해 터전을 잡았지만 요즘은 연고보다 편의성과 실리가 우선이다. 지자체별로 귀농지원센터를 찾아 정보를 수집하는 건 기본이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부가 가치를 생산할 틈새시장이 없는지 관찰한다. 자연과 어울려 사는 생태형 귀농이 1세대 귀농의 99%를 차지했다면, 엘리트 귀농자들은 그 전형적인 패턴 위에 ‘플러스 알파’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초보 농부로 변신한 14년 차 호텔리어


전라북도 장수에는 귀농 가족 12가구가 모여 사는 ‘하늘소마을’이 있다. 이곳은 7년 전 장수군청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전국 최초의 귀농자 마을이다. 집이 딱 12채뿐이어서 한 가구가 떠나야 새로운 귀농 가족이 터를 잡을 수 있다. 지난 4월 이곳에 정착한 초보 농부 김성래(42)씨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식음료 부문 책임자로 일하다 외식업체 점장을 지낸 호텔리어 출신이다. 사람 발길이 드문 아주 깊은 시골에서 살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이곳을 택했다. 지자체를 통해 땅과 농기구 등 필수 인프라를 지원받을 수 있어 경제적으로 유리하고 적응도 쉽기 때문이었다.

 

하늘소마을의 ‘본업’은 유기농 농산물 직거래다. 귀농 공동체지만, 공동 생산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땅에서 각자 재배하고 스스로 판매한다. 군에서 지원한 땅을 가구별로 똑같이 나눴을 뿐 활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도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태 체험 프로그램 등 마을 단위 공동 프로그램도 가끔 운용하지만 본업인 농사짓기는 모두 ‘각자 알아서’해야 한다. 전통적인 시골의 어울림과는 좀 다른 스타일의 공동체다.

김성래씨는 비닐하우스 2동에 25종의 작물을 심어 인터넷으로 판다. 1년 동안 한두 작물을 많이 짓는 것보다 조금씩 자주 생산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판단해 철저하게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밀어붙였다. 여기에 외식업계에서 일하던 인맥과 노하우를 살려 판로를 개척하고 인터넷과 신문 광고를 통해 부지런히 홍보하니 7개월 만에 제법 그럴듯한 개인 사업자가 됐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아내의 에코 블로그도 자연스레 유기농 직거래 장터가 됐다.

“농사는 시골 분들이 잘 짓지만 유통이나 홍보는 아무래도 도시 출신 젊은이들이 더 잘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귀농자들이 도시와 농촌의 가교가 될 수 있어요. 현지인에게 뭘 얼마나 심을지 배우고, 그 대신 어떻게 홍보하고 팔 것인지 아이디어를 전해 주는 거죠.” 이들 가족은 아직 온전한(?) 농부가 아니다. 아내 박진희씨가 서울에 남아 직장 생활을 하는 주말부부이기 때문이다. 아직 시골 생활의 틀이 잡히지 않았고 농사만으로 가계를 감당하기 힘들어 내년 초까지 시한부 주말부부로 지내기로 했다. 이것은 사실 귀농자들의 비슷한 고민거리여서 하늘소 마을도 현재 12가구 중 세 집이 주말부부다. 게다가 대부분 맞벌이. 시골에서 무슨 맞벌이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 사회생활 경험을 살려 군청 사회복지사나 인근 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한다. 하늘소마을의 일상은 이렇듯 다른 시골 마을과 사뭇 다르다.

봉화 터줏대감 된 서울대 출신 홍보맨


경상북도 봉화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귀농 인구가 몰리는 ‘귀농의 메카’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남짓 달리면 닿을 만큼 비교적 가깝고 땅값도 저렴해서 귀농을 염두에 두는 사람에겐 매력적인 조건을 갖춘 것. 지난해에만 무려 85가구가 도시를 떠나 봉화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 터줏대감 송성일(47)씨는 귀농을 준비하며 1년 넘게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다 청량산 자락 ‘비나리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했던 송씨는 도시의 반복된 일상에 지쳐 서울 생활을 청산했다. 2000㎡의 땅에 잡곡과 고추·고구마를 심었고, 화가인 아내 류준화씨는 집 근처 폐교를 미술관으로 개조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전시회도 열며 마을 사랑방을 꾸려가고 있다.

 

“홀아비 농사를 짓느라 힘에 부친다”고 하면서도 표정만은 환한 걸 보니 제법 익숙해진 농사일이 즐거워 보였다. 땅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느끼는 즐거움은 도시에서 얻지 못한 색다른 활력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농부의 삶이 그의 정신을 완전히 충만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는 관심사가 다양하고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농사일에 지친 시골 남정네들이 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데 송성일씨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내가 이 마을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찾아가는 공부였다.

사실 그는 귀농 12년 차 베테랑이다. 그 기간 동안 마을에서 영향력을 넓혀 요즘은 본업인 농사일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비나리마을이 정보화마을로 지정돼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체험 마을 제정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 외지 사람이 마을 일에 앞장서는 것은 농촌의 전통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이지만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 온 그였기에 가능했다. 요즘 비나리마을 귀농자들은 농촌 문화 체험장을 만들거나 약초 가공 판매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들 덕분에 조용한 농촌 마을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그 도화선이 송성일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농촌 정착에 실패해서 이곳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요. 나홀로 살던 도시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죠. 성공적인 귀농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마을 사람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살 수 있느냐거든요. 저도 10년이 넘게 산 뒤에야 겨우 이곳의 주민이 된 것 같아요.” 그의 바람은 비나리마을을 ‘살 만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마을끼리 활발한 교류를 진행하면서 농사와 예술이, 도시와 농촌이 서로 만나는 마을, 이른바 ‘인터빌리지’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매달 비나리마을의 문화를 체험하러 미술관을 찾아오는 도시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하니, 그의 꿈이 이뤄질 날이 그리 머지않은 듯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대기업 마케터


이맘때면 시골 마을마다 대추 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지만 젊은 일손이 부족해 그걸 털어낼 짬이 없다. 하지만 귀농자가 꾸준히 찾아와 몇 년째 마을 가구 수가 그대로인 경북 봉화마을은 3040세대 젊은 농부들이 일손을 모으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기자가 봉화를 찾은 날은 마침 10년 차 베테랑 귀농자 김일현(40)씨 집에 귀농 후배들이 모여 대추를 터는 날이었다. “대추나무는 빨리 털어야 내년에 열매가 더 많이 열린다”는 그의 말에 옆집에 사는 귀농 1년 차 초보 부부가 눈을 반짝인다. 이곳 귀농자들은 이렇게 자주 모여 농사일은 물론이고 자녀 교육, 마을 전반에 관한 일을 꾸준히 상의한다.

 

김일현씨는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다 고향 봉화로 귀농했다. 도시 생활을 갑자기 정리하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고향에서는 심리적으로 더 안정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고향이래도 낯선 시골살이는 그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겼다. 유치원 교사인 아내와 함께 고향행을 결심할 때만 해도 의기양양했다. 복잡한 도심만 벗어나면 정말 신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에도 도시와 똑같이 어려운 삶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그러잖아요. ‘시골 가서 농사나 짓자’고요. 그런데 농사가 어디 쉬운가요. 무턱대고 밭부터 샀다가 빚더미에 오른 사람이 수두룩하더라고요. 사실 경제성 측면에서 보면 농사는 좀 위험한 선택이죠. 그래서 저는 밭 안 빌리고 집 주변 텃밭에 표고버섯이나 감자, 토마토를 조금씩 심었어요.” 주위 귀농자들이 인터넷 홍보에 열을 올릴 때 그는 좀 다른 전략을 세웠다. 수확한 작물을 죄다 서울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나눠 먹으라’고 선심을 쓴 것. 시골에서 직접 키웠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의 채소를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생겨났다.

김일현씨는 농사보다 체험학교 주인장으로 더 유명하다. 문 닫은 학교 건물을 싸게 매입해 농촌체험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내년부터는 콩 농사를 직접 지으며 도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콩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 메주 만들기 체험 등 세부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손으로 담근 메주를 판매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가 체험 프로그램 구축에 힘쓰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보다 ‘교육’적인 이유가 더 크다. 평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자극과 체험의 기회를 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왔고,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 많고 여유가 있어도 아이들 공부 못 시킬까 봐 귀농을 주저하는 분들이 참 많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배우는 게 더 많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창의성과 감수성을 키우고 싶다고요? 그게 학원에서 되겠어요? 정말 교육을 시키고 싶다면 자연으로 보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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