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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투자] 숨막히는 아파트 임장기 [8]
경매천사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10 | 조회 19002 | 2010.03.05 09:42 | 신고

 선택의 기로

 

 

기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매펀드를 운용하느라 수십억 규모의 빌딩 매물만 찾아 보다가, 오랜 지기의 부탁으로 오랜만에 아파트 매물을 검색하게 되었다.

 

무대포가 주무기인 아줌마부대들의 각축장이자, 시세보다 단돈 100만원만 싸게 받아도 법정이 떠나가라 낙찰의 환호성을 내지르는 실수요자들의 주무대인 아파트 경매시장!

 

아파트 경매와 나의 인연은 2년여 전, 일산에 있는 30평형 아파트를 실수요 목적으로 76%대에 낙찰받았던 게 마지막이었다.

 

아파트의 거품이 빠지면서 매매가가 한참 곤두박질치던 때였음에도 당시 경쟁자는 네 명이나 됐었는데, 낙찰자를 호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당시의 기억이 짜릿한 전율과 함께 되살아난다.

 

현재 내 오랜 지기의 여윳돈은 1억원.

 여기에 경락잔금 대출을 60%까지 끌어다 쓴다면, 물건 검색의 범위는 감정가 2억원에서 3억 5천만원 사이의 아파트가 될 터였다.

 

실물경기가 회복 중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저기 불안과 후퇴의 조짐도 없지 않아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 하에, 경기 침체기에도 나름대로 수익모델이 될 수 있는 30평 미만의 중소형 아파트를 타깃으로 삼기로 했다.

 

당시, 불패의 신화 속에서 강한 하방경직성을 보이고 있는 강남재건축아파트를 필두로 서울지역 아파트에 대한 경쟁의 열기는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울지역 아파트로는 적정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매각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무조건 경쟁없는 수도권 이남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일. 고민 끝에 검색 대상 지역을 1기 신도시 중에서 선정하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경의선 복선화와 제2자유로 호재가 있는 일산에 주목했다. 1기 신도시 중 분당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일산은 입주가 완료된 지 올해로 16년 차라 여기저기서 단지 리모델링 이야기가 툭툭 불거지고 있었다.

 

 먼저 입주가 시작된 분당의 집값이 리모델링 연한인 입주 15년째를 기점으로 한차례 요동쳤던 선례를 감안할 때 일산 또한 충분히 상승여력이 있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어떤 책에선가 경매고수들은 첫기일 입찰을 노린다고 했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어리석은 짓이리라.

 

1번 유찰된 물건도 적정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2번 이상 유찰된 물건 중에서 법적인 판단이 까다로워 경쟁이 덜할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찾아 보았다.

 

예비적으로 두개의 물건이 선정되었다.

먼저, 두 차례 유찰된 상태에서 지난 기일 낙찰전력이 있는 재경매 물건.

 

지난 기일에 7명이 경쟁해 감정가의 85%선에서 낙찰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낙찰자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아 재경매로 나온 물건이었다.

 

얼핏 보아 법적인 하자는 위장임차인으로 보이는 소액임차인 3명.

 경매개시시점에 임박해 앞다투어 전입 신고한 3명의 임차인이, 각각 방 하나씩을 보증금 1500만원에 임차했다며 배당요구를 해 두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였다. 유료사이트 정보상으로는 미납된 관리비도 없는 깔끔한 물건이었다.

 

‘전낙찰자의 잔금미납이유는 대출이 여의치 않았거나, 자금계획이 틀어진 탓이겠지.’

 

위장임차인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소액임차인이야, 형사고소하겠다는 변호사명의의 내용증명 한통 보내면 금방 백기 들고 투항할 것이니, 적정가에만 낙찰받을 수 있다면 도전해 볼만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내 발목을 움켜 잡았던 건 지난번 기일의 낙찰가와 7명이라는 경쟁자의 숫자였다.

 

재경매라는 이유로 비록 지난번보다는 경쟁이 덜하겠지만, 지난번 패찰의 고배를 마신 누군가가 다시 응찰한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낙찰 받으려 기를 쓰고 덤빌 텐데, 그렇다면 금번 낙찰가는 전낙찰가를 살짝 넘어 설 가능성이 있었다.  

 

20층 아파트 중 8층에 위치한 로얄층에, 지하철 3호선 주엽역이 150m거리에 있는 초역세권 아파트라, 85% 이상에 받아도 일반인들에게는 나름대로 알찬 수익을 낼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현장조사를 통해 정확히 시세를 확인한 건 아니었지만, 시세가 짜기로 소문난 KB부동산시세와 한국감정원 시세의 하한가,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급매물 시세 등을 고려해 보건데, 감정가는 적정하게 잡힌 것 같았다.

 

현재 최저가는 감정가 대비 64%.

예상 낙찰가가 85% 이상이라면 딱히 매력적인 물건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그냥 감정가의 80% 수준을 써 보고 안되면 말자" 하는 마음으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다음 후보 물건 역시 2번 유찰되어 최저가는 64%였다. 감정가는 3억 2천만원.

경의선 백마역이 코앞이라 경의선이 복선화되면 충분히 상승여력이 있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법적인 하자는 대항력있는 선순위 임차인의 존재.

물건명세서 상 임차인으로 공지된  홍**의 전입일자가 근저당권 설정일보다 한참 빨라 얼핏 대항력이 있어 보였는데, 홍**는  권리신고도, 배당요구도 일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료사이트에 올려진 정보를 보니 경매신청자인 근저당권자의 청구액이 무려 2억 5천만원이 넘는다. 감정가가 3억2천만원인 아파트에 대출액이 2억 5천만원이라면,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았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선순위 세입자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근저당권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대항력있는 선순위 세입자를 앞에 두고 최대 한도까지 대출을 해주었을 리 만무한 것이다. 여러모로 위장임차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물건이었다.

 

인터넷에서 대략적인 전세시세를 확인해 보았더니 1억 4천에서 1억5천만원.

 

홍**가 진정한 임차인이라면 이번 기일뿐만 아니라 다음번에도 유찰되어야 할 물건이었다.

 

아쉬운 한숨이 입술새로 새어나온다.

마치 썩은 고기처럼 위장임차인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이런 물건은 경매지식이 보편화 된 요즘에는 특수물건 축에도 들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이런 물건만 집중적으로 노리는 경매인들이 많아져, 이번 기일에 적지 않은 경쟁자들이 몰릴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면 낙찰가는 치솟을 것이고 결국 직전 최저가를 훌쩍 넘겨 낙찰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물건.

 

"그렇다면 미련없이 포기하는 게 상책이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다른 물건으로 눈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멍하니 벌어진 망막 위를 얼핏 스쳐간 근저당권자의 독특한 상호가, 강한 의문부호와 함께 마치 낙인처럼 뇌리에 새겨졌다!!!

 

 

이 집엔 뭔가가 있다!

 

이 건 물건의 근저당권자는 은행이 아닌, 신용보증기금이었다.

오호, 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신용보증기금이 어떤 곳인가.

중소기업의 육성과 지원을 위해 공적인 자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그야말로 공익적 기관 아닌가. 영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은행과 달리, 대출 진행시 담보물의 가치와 무관하게 공익적 견지에서 대출을 일으켜 주는 곳 아닌가!

 

기업의 실적과 신용도, 장래의 발전가능성이 양호하다면 담보물의 가치는 대출심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터였다.그렇다면 선순위 세입자가 있어도 거액을 대출해 줄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등기부상 근저당권의 채무자를 확인해 보니, 이 건 아파트의 소유자가 대표이사로 있는, 건설업체로 추정되는 주식회사였다. 인터넷을 통해 회사의 법인등기부 등본과 공시된 제무제표 등을 열람해 보니, 비록 현재는 도산한 상태여도 이건 대출 당시에는 나름대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지닌 유망한 중견 건설 업체였다.

 

신용보증기금에서 이 건 아파트만을 담보로 대출해 준 것이 아니라는 심증이 굳어졌다. 선순위 세입자와는 무관하게 당시의 기업 가치와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대출해 준 것일 터였다.

 

그렇다면 홍**를 위장임차인으로 단정할 순 없었다!!!

 

불끈 치솟는 전투의욕으로 법원에서 공지한 자료들과 유료사이트에 올라 온 모든 정보들을 샅샅이 훑어 내려갔다. 한참을 몰두하는데, 점유현황보고서에 흥미로운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집행관이 수차례 목적물을 방문한 결과, 임차인 홍**가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임차인이 보증금 액수에 대하여는 진술을 거부함”

 

홍**가 경매목적물에 현재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한 위장임차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머릿속을 스쳐간다.

 

임차인의 전입신고는 근저당 설정일보다 5년여가 빠른데, 임차인이 단순한 전입자가 아니라, 현재 그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면 상정가능한 스토리는 두가지 뿐이었다.

가족이거나, 진정한 임차인이거나!

 

그러나 소유자와 임차인은 성이 확연히 달랐다. 소유자의 성은 흔치 않은 희귀성이었다.

소유자의 처 쪽 사람인가?

고개를 갸우뚱 해보지만, 가족관계등록원부를 확인해 보지 않는 이상 추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일단 공지된 자료를 바탕으로, 상상력과 논리적인 추리를 최대한 동원해 어느 정도 사실관계를 확정해 낼 필요가 있었다.

 

등기부 등본을 꼼꼼히 열람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유자의 주소지에 변동이 있었다. 소유자의 주소지가 전거를 이유로 변경된 시점은 임차인이 전입신고한 일자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즉 소유자가 주민등록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마자 곧바로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했던 것이다.

 

오호, 이것 봐라?

이런 저런 정황상으로는 진정임차인으로 추정되는데, 진정한 임차인이 법원의 공문을 받고도 권리신고나 배당요구서 등을 접수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집행관의 요구에도 보증금을 묵비했다?

 

낙찰자에게 대항력을 행사하겠는가, 아니면 경매절차에서 배당을 받겠는가, 라고 임차인 백명에게 물으면 대부분의 임차인들은 경매절차에서 배당받겠다는 대답을 할 것이다.

 

낙찰자가 어떤 사람인지, 자력은 있는지 등이 불명한 상태에서 대항력만 믿고 법원에 권리신고를 하지 않을 강심장은 임차인 중에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인 것이다.

 

 비록 임차인이 낙찰자에게 대항력을 행사하겠다고 마음먹어도 자신의 보증금이 얼마인지는 권리신고를 통해 밝히는 것 또한 정상적인 경과이다.

 

보증금 액수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추측으로 낙찰받은 자와 사후에 보증금 액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필요가 임차인한테는 없는 것이다.

 

여러 정황상 홍**는 진정한 임차인으로 강력히 추정되었다.

그런데 임차인은 시종일관 자신의 보증금을 묵비하고 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이 집엔 뭔가 깊은 내막이 있다!’

싸늘한 전율과 함께 섬광처럼 머릿속을 파고든 결론이었다!!!

 

 

짜릿한 예감

 

법원송달내역을 확인해 보니, 목적물 소재지로 발송된 임차인에 대한 최고서는 첫 번째 송달만에 도달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오히려 소유자에 대한 통지서가 수취인 불명을 이유로 두 차례 반송되었다가, 특별송달을 거쳐 도달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역시 해당 목적물에는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결론적으로 홍**라는 임차인은 위장임차인이 아닌, 진정한 임차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경매개시결정시점보다 8년여 전에 전입신고를 한 임차인!

한 자리에서,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한 긴 세월동안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며 살았다는 것이 쉽사리 믿기진 않았지만, 뚜렷한 반증이 없는 이상 섣부른 추측만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건 금물이었다.

 

소유자가 전거한 뒤, 곧바로 홍**가 전입했고 그가 현재 그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면 진정한 임차인으로 추정하고 접근하는 게 헛걸음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얼핏 보면 위장임차인 물건 같지만, 좀 더 꼼꼼히 파고들면 진정한 임차인의 증거와 정황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물건!  그럼에도 오랜 경험을 통하여 체화된 본능적인 직감상, 분명 뭔가 깊은 내막이 숨겨져 있는 물건!!

 

조사를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물건이라 최종적인 경쟁자는 몇 명되지 않으리란 판단이 들었다. 사천 오백 사십 오억개의 뇌세포가 머릿속에서 제각기 아우성을 친다. 수익성을 불문하고 잠재된 탐구욕과 정복욕을 일깨우는 물건인지라, 현장조사를 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좋다, 이 물건으로 결정하자!!!"

 

현장으로 인력을 내보내기 전에, 현장 조사에 대한 대강의 아웃 라인을 정했다.

 

일단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고려할 작정이었다.

하나는 그다지 높지 않은 가능성이지만, 홍**가 소유자 혹은 소유자 처의 친족일 가능성이다.

 

통상적인 위장임차인처럼 소유자와 임차인이 함께 거주한 것이 아니라, 소유자가 전거한 뒤 임차인이 들어와 살았던 경우이므로 상식선에서는 납득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꼼꼼히 조사해 보기로 했다. 물론  현재 보증금을 묵비하고 있는 임차인의 비정상적인 정황을 염두에 둔 결론이었다.

 

또 하나는 홍**가 진정한 임차인이라는 전제에 선 결론이었다.

현재 이 건 아파트의 전세시세는 1억 4천에서 1억 5천만원!

홍**가 진정한 임차인이라면 이번 기일은 물론 다음 기일까지도 유찰되어야 적정 수익을 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서는 기묘한 추리 하나가 조심스럽게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 추리가 사실로 드러날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만약 추리가 사실로 드러나면 나름대로 알찬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홍**가 가족이거나 무상임차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매신청자인 신용보증기금에 들러 내막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만에 하나 기업가치만 보고 해 준 대출이 아니라면 신용보증기금에서 홍**에 대한 무상 임대차각서를 징구해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홍**에 대한 무상임대각서가 제출된 것이 확인되면 응찰을 포기하기로 내심 마음먹었다. 그 정도의 조사만으로 대세가 결정되는 사안이라면 적정 수익을 내기란 도무지 불가능한 까닭이다.

 

홍**는 대출심사에서 크게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에도 불구하고, 확실을 기하는 차원에서 신용보증기금의 담당직원을 만나 보았다.

 

대출 당시의 담당자가 다른 지점으로 전보된 상태라, 현재 담당자의 답변은 애매하고도 모호했다.

성의 없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우리 쪽의 예리한 추궁을 일축하던 담당자는, 명확한 대답을 듣기 전에는 한걸음도 물러 설 수 없다는 우리 쪽의 결의를 뜨거운 눈빛 속에서 눈치채고는 순순히 내막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담당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내며 들려 준 내막은 우리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건 대출 당시 채무자회사는 건설업계에서 몇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망한 건설 중장비 임대업체였고, 재무구조가 튼실하고 신용도도 좋아 담보는 형식적으로 설정하고 대출을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건설 불경기의 여파로 견고하던 채무자 회사는 작년 말 도산하기에 이르렀고, 연대보증인이었던 대표이사도 그후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결국 담보물에 대한 경매를 신청하긴 했는데, 경매개시 후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지금은 회사에서도  채권전액 회수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는 것이다. 자기들도 법원의 공지를 통하여 선순위 임차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을 뿐, 임대차에 얽힌 자세한 내막은 전혀 모른다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아무리 채무자 회사의 재무구조가 튼튼해도 명색이 담보대출인데, 선순위 전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리가 있겠느냐?"  라는 우리 쪽의 추궁에 가까운 질문에,

"원칙대로라면 제대로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전임자가 그 부분은 놓친 것 같다."

라며 얼버무리는 담당 직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전임자나 현재의 담당자나 모두 이 건 때문에 상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을 게 뻔한데, 우리까지 질책성에 가까운 질문을 계속 해대는 건 분명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이 건으로 문의해온 사람이 그동안 꽤 있었지요?" 라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져 보았다.

 담당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선생님처럼 끈질긴 분은  없었어요!"

 

여기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잠재적 경쟁자가 열 명이었다고 가정하면, 이쯤에서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예상되는 경쟁자는 경매고수로 추정되는 두세 명!

거기다 이런 물건에서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이 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소유자나 채무자의 측근들까지 감안하면 대략 4명 정도의 경쟁자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긴장감이 잔뜩 수축된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드러나는 윤곽

 

현장으로 차를 몰아가면서 앞으로의 조사 방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 단계에서 홍**가 위장임차인 혹은 무상임차인일 가능성을 포기하는 건 일렀다.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정리해 본다. 

 

1. 홍**는 소유자가 다른 곳으로 전출한 다음 날 곧바로 전입신고를 했다.

1. 등기부 등본 상 소유자의 전출지는 일산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파주일원의 브랜드 아파트이다.

1. 소유자가 이사한 곳의 아파트 평수는 40평대로 이 건 아파트보다 규모가 크다.

1. 집행관의 점유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홍**가 목적물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1. 홍**는 법원에 배당요구는커녕 권리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1. 계속되는 집행관의 요구에도 홍**는 보증금을 묵비하고 있다.

1. 소유자의 성은 희귀성인 석씨로 임차인의 성과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홍**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주목했다.

홍**가 통상적인 임차인들의 행태와 달리 법원에 권리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건, 권리신고 혹은 배당요구서에 반드시 첨부해야 될 임대차계약서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홍**가 소유자의 전거 직 후 전입한 것으로 보아 의도된 위장임차인은 아닐지라도, 소유자와 특별한 관계여서 무상으로 살고 있었던 것 아닐까?

쉽게 상정할 수 있는 스토리였지만, 현재의 정황으로 미루어 개연성 없는 스토리는 아니였다.

 

홍**가 법원에 자신이 임차인임을 드러낸 흔적은 전혀 없다.

물건명세서에 임차인으로 공지된 것은, 집행관이 선순위 전입자가 있는데도 임대차관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게 되자, 단지 홍**가 임차인일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취지로 공지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점유현황 보고서상 홍**가 보증금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했다는 기재가 있긴 하지만, 이는 딱히 보증금에 대하여만 진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경매절차 전반에 대하여 협조를 거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십년 가까이 거주해 오던 집이 경매에 들어 가 당장 거리로 내몰리게 생겼으니, 홍**의 심사가 온전할 리 만무한 것이다. 더군다나 홍**가 무상임차인이라면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이, 아무런 대책없이 내쫓기는 형국이니, 아무리 집행관이라 해도 홍**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다.

 

홍**가 무상임차인일 가능성은 소유자측과의 가족관계 여부를 조사해 보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일단 관리사무소에 들러 홍**의 세대 구성원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비협조와 불친절은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해당호수 경매건 때문에 문의할 게 있어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손사레를 치며 피하는 담당직원을, 우리는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처음에는 귀찮은 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비록 건성이지만 묻는 말에 착착 대답이 돌아왔다.

 

작년에 관리사무소 인력이 대폭 교체가 이루어져 홍**가 정확히 언제부터 거주했는지는 알아 낼 수 없었다. 관리비 고지서의 발급명의를 물어 보았으나, 요즘에는 세대의 전출, 입이 빈번해서 해당 거주자 명의로 고지서를 발급하지 않고 동, 호수를 기준으로 발급한다는 맥빠진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해당 호수의 비상연락망에 대해 물어 보자, 처음에는 개인정보임을 이유로 극구 함구하던 직원이,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렬한 눈빛에 압도되어(^^) 결국은 서류철을 하나 들고 왔다.

 

해당 호수의 현재 거주자는 홍**. 동거인은 부인 김**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상시를 대비해 만들어 둔 실거주자 연락처는 작년 말, 즉 경매개시 시점과 엇비슷한 시기에 새로 작성된 것이라 홍**가 그동안 계속 거주해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과거 누가 살았는지 여부는 관리사무소에 중요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 거주자들의 신상정보는 보관하지 않는다는 직원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관리사무소를 나왔다.

 

일행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홍**의 부인은 성이 김씨. 역시 소유자와는 무관한 성씨였다.

가족관계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소유자의 처를 수배해서 만나보는 방법밖에 없는듯 했다. 채무자 회사의 대표이사인 소유자는 현재 채권자들의 눈을 피해 잠적 중이니, 좀 더 자세한 내막은 소유자 처의 입을 통하여 듣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리사무소로부터 해당 호수를 담당하는 통장의 연락처를 받아와 전화를 걸어 보았다. 홍**가 결격 사유 없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향토예비군 혹은 지역 민방위대에 속해 있을 테니, 매번 훈련 소집통지서를 건네주었을 통장이 해당호수에 누가 거주하는지, 언제부터 거주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겠느냐는 소박한 기대로 걸어 본 전화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짜증 섞인 대답만이 건너왔을 뿐이었다. 예비응찰자들한테 어지간히 시달렸는지, 우리 쪽에서 몇 마디 건네기도 전에 상황을 눈치 챈 통장은 속사포처럼 짜증스러운 말들을 뱉어낸 뒤 전화를 끊어 버렸다.

 

직접 찾아가 봐?

조심스레 머리를 쳐든 생각이었지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현재 해당 호수에 홍**가 거주하고 있는 건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홍**가 경매절차의 진행에 비협조적이라는 사실도 분명했다.

괜히 찾아가, 가뜩이나 쓰린 임차인의 속을 박박 긁어 대느니, 다른 증거를 통해 추리를 완성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게다가 홍**의 속내를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잖은가?

혹시라도 홍**가 저가낙찰을 노리고 역정보를 흘린다면 괜히 혼돈만 가중될 뿐이었다.

 

알 길 없는 홍**의 속내를 머릿속으로 더듬어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막연하게 엉켜있던 추리가 선명한 그림이 되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되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주먹을 불끈 쥐며 혼자 말처럼 내뱉은 말에 일행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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