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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땅이야기] 소형주택 - 외국이 주목한 한국의 작은집 [1]
도담채주택 (cko72***)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4 | 조회 3993 | 2018.01.19 10:21 | 신고

소형주택 - 외국이 주목한 한국의 작은집


[한겨레] 2차
인간의 행복 가운데 하나가 물로 몸을 씻는 즐거움이다. 근사한 욕조, 전망 좋은 화장실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값비싼 대리석으로 치장하고 거품 나오는 고급 욕조가 아니어도 독특하고 괜찮은 샤워실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좀 색다른 샤워장을 만들 방법은 뭘까? 누구나 해봄 직한 상상이 야외 샤워장이다. 주변 시선에 노출되지만 않는다면 시원한 바깥바람 맞으며,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고 풀내음을 맡으며 샤워를 하는 것. 한적한 전원주택이라면 분명 시도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이런 상상은 어렵잖게 실현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물론, 여름용이지만.

이 집은 마당 데크에 이렇게 샤워장을 만들었다. 나무로 벽을 만들어 가리고, 대신 지붕을 달지 않았다.

전원주택의 경우 야외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렇게 씻는 곳을 따로 두는 것이 편하다. 수도꼭지 하나로 해결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신경을 썼다.


근사한 산과 푸른 녹음, 파란 하늘처럼 좋은 인테리어가 있을 리 없다.

 건축은 거들뿐. 이런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도 집은 달라진다.

좋은 경치를 보기 좋은 창 하나면 비싼 그림이 필요 없다. 창문은 액자가 되고 산은 그림이 된다.


사실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다. 오늘 이야기는 이 샤워장이 아니라 이 집에 대한 이야기다.

저 샤워장이 있는 집은 이렇게 생겼다. 인삼의 고장 충남 금산, 진악산을 마주보는 언덕에 들어선 집이다.


언뜻 보면 창고 겸 살림집 같아 보이기도 한다. 네모 상자 모양 집에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하나 얹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집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릴 모습 그대로 지은 집이다. 집 크기도 작다. 평수로 환산하면 저 마루 포함해 21평. 마루를 빼면 13평짜리다. 방 두개,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마루가 넓을 뿐. 그리고 야외용 저 샤워실 정도다. 공사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저 마당에 나무를 깐 데크와 샤워실 공사비까지 다 포함해 1억원. 건물 자체만으로는 그보다 적게 들었다. 이 작은 집은 일반에겐 알려질 일이 없지만 건축 쪽에선 나름 주목받는다. 그리고 외국 건축 전문 저널에서도 연이어 다뤘다. < 아키데일리 > , < 아키넷 > , < 디자인 붐 > 등 이쪽에선 이름난 저널들에 모두 실렸다.


왜 그럴까? 이 집이 담아내려 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생각을 담았을까?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작은 집의 가치와 미학이다.

집이란 작을수록 짓기 어렵다. 그래서 건축 전문가들은 작은 집에 매혹된다. 큰 집보다 작은 집이 설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이 크면 뭐든지 가능하다. 큰 부엌? 크게 만들면 된다. 특별한 공간?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집이 작으면 이 모든 게 어렵다. 집어넣기는커녕 빼기 바쁘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공간을 뽑아내야 한다. 이런 작은 집에서 건축적인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한다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 고수는 큰 집이 아니라 작은 집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건축가 에리히 멘댈존은 이런 말까지 남겼다. "건축가는 원룸 구조로 설계한 건축물로 기억된다." 가장 작은 집은 원룸이다. 이 가장 작은 집을 설계한 것을 보면 그 건축가의 철학과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 샤워장 딸린 작은 집을 일단 구경해보자.


정말 단순하다. 긴 일자형,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꼴이다.


마루는 상당히 넓다. 이 집의 주인은 대안학교 쪽에서 일하는 분이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찾아올 일이 많다.

마루는 그 회의실 역할을 한다. 물론 손님 맞는 곳이기도 하다.

마루 쪽에서 집을 보면 방 두 개가 가로로 이어져 상당히 깊어 보인다.


마루 지붕에 눈길이 간다. 예각으로 튀어나온 나무 부재 디자인인데,

이렇게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쨌든 가장 기본적인 나무 부재들만으로,

가장 많이 짓는 공법 그대로 쓰면서 그 자체가 디자인이 된다.


마루에 앉으면 진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집이 액자가 된다.

우리 전통 한옥에서 중요한 `차경'이다. 차경은 경치를 빌려오는 것.

주변의 경치를 내 것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마루 현관문을 열면 방이다. 문을 열면 또 문. 그 문을 열면 다시 다음 방이 보인다.


거실 역할을 하는 앞방 다음 뒷방은 부엌 겸용이다. 뒷방 위에는 아주 작은 다락방이 있다.


문을 다 열면 이렇게 된다. 네모꼴 프레임 안에 다시 네모꼴 프레임이 연이어지는 이 중첩되는 모습. 우리 한옥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문이자 창인 창호가 벽도 되고, 그 벽이 열려 접혀 사라지면서 방과 방, 방과 마루가 하나로 이어진다.

건축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건축을 시작한 이래 20여년 이상 과연 한국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일본이나 중국의 건축과 다른 한국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건축은 이를테면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공간과 공간 사이로 끊임없이 흐름이 있다. 그리고 내외부의 방들은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지나가는 흔적을 담는다."


이젠 방 안에서 마루 쪽을 본다. 문이 다 열리니 커다란 방 하나가 됐다.

모든 공간이 통하니 건축가의 말대로 빛과 바람이 집 전체를 관통한다. 한옥만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안쪽 방의 작은 다락은 이 집의 매력 포인트다. 작은 집이어도 나름 서재로 쓸 수 있게 다락을 활용했다.


부엌 입구에 다락으로 가는 사다리를 달았다. 올라가면 작은 다락방이 나온다. 다락방 모습.


이것으로 집구경 끝.

금산주택은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고, 작지만 크다. 13평이어도 한옥 특유의 창호 시스템으로 공간이 열리고 닫히며 이어지고 합쳐지고 나뉜다. 그 공간감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한옥을 그대로 현대 건축으로 바꾼 셈이다.

이 금산주택을 설계한 이는 이 두 사람이다.


건축사무소 '스튜디오가온'을 운영하는 부부 건축가, 임형남(51) 소장과 노은주(42) 소장이다.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건축계의 소문난 작은집 예찬론자다. 강연과 글쓰기로 건축이 문화임을 알리는데 앞장서왔다. 여러 책을 썼고 활발히 강연하면서 건축이란 결코 근사하고 멋진 작품 같은 건물을 만드는 게 아니란 것을 역설해왔다. 당연히 이들이 설계한 주택 중에는 유독 작은 집들이 많다. 그것도 20평 미만인. 쉽게 말해 건축가 입장에선 정말 돈 안 되는 작업들이다. 하지만, 건축의 기본은 집이고, 이 집이란 것은 작아도 좋다는 것이 지론이기에 이 부부는 이런 작업을 즐긴다.

이번 금산주택도 원래 건축주는 40평 정도의 집을 생각했다. 집이 클수록 건축가는 더 많은 설계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건축주와 상의해 오히려 집 크기를 줄였다. 작아도 부부 둘이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크기에, 진악산의 수려한 모습을 창문으로 받아들이는 집, 화려한 장식이나 인테리어는 없어도 대신 깔끔하고 소박한 집. 찾아오는 학생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마루가 있고, 방 2개를 더해 3칸으로 이뤄진 집을 시도했다.

건축가는 교육계통에 일하는 건축주란 점에서 이 집을 한국 전통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이 집의 현대 버전으로 설계하기로 했다. 바로 이 유명한 집이다.


어디서 본 듯한 집인 분들이 많을 듯하다. 이 집은 어떤 집의 일부다. 바로 이 집.


옛 1000원짜리 지폐 뒷면에 그림으로 들어간 우리나라 서원의 대표, 도산서원이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기리는 곳이다. 퇴계는 우리나라 곳곳에 서원을 짓기를 장려했던 중심인물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념인 성리학을 가르치는 교학 공간으로서 서원은 중요했다. 하지만, 정작 퇴계 자신은 큰 서원을 짓지 않고 아주 작은 집을 몇채 지었다. 저 사진 오른쪽에 나오는 도산서당, 그리고 그 옆 농운정사 등이었다. 앞서 건축 대가는 작은 집에서 판가름난다고 했듯 퇴계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지만 크고 장엄한 집이 아니라 아주 작은 집만으로도 자기가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지금의 도산서원은 그를 기리는 후학들이 나중에 조성한 것이다.

사진 왼쪽에 지붕 옆에 지붕을 또 댄 작은 집이 도산서당이다. 퇴계는 쉰일곱에 이 작은 집을 짓기 시작해 3년에 걸쳐 천천히 꼼꼼히 지었다. 이 도산서당의 구조는 정말 단순하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기본 단위는 `칸'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 그게 방 또는 공간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칸을 기준으로 지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집이 세칸짜리다. 초가삼간 할 때 그 삼간이다. 저 도산서당은 엄밀히 구조를 따지면 4.5칸이지만 기본 구성원리는 3칸집이다. 그러니 가장 작은 집인 것이다.


맨 왼쪽에 덧달린 공간 딸린 부엌, 그리고 방, 그 다음은 마루. 마루에 약간 옆으로 덧댔지만 그래 봤자 조금이다. 방 하나, 부엌 하나, 마루로 끝.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최소한의 집이다. 퇴계는 이 작은 집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날이 궂으면 방에서, 날 좋으면 마루에 모여 앉아 수업을 했다. 퇴계의 면모는 이렇게 검소했지만, 학문은 그 누구보다도 높았다. 이 작은 집에 자기의 철학과 뜻과 취향을 담아낸 점은 의미심장하다. 건축은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는 생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도산서당은 잘 보여준다.

생각해보라. 그 누구보다도 유명한 이가 이렇게 작은 집에서 안분지족하며 소탈하게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그러면서도 집의 디자인이나 구성은 단순하되 범상찮다. 그래서 한국의 건축가들은 이 집을 높게 평가하고, 퇴계를 위대한 학자이자 위대한 건축가로 평한다.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들에게도 이 도산서당은 생각을 담아내는 훌륭한 집의 모범이었다. 금산주택을 짓게 되면서 건축주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건축가는 이 도산서당의 개념을 금산주택의 모델로 제안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저 금산주택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집은 조선시대의 대선배 건축가의 걸작에 현대 한국의 건축가가 바치는 오마주다.

건축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도산서당은 일자형의 단순하고 작은 집이지만, 아주 큰 생각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경(敬) 사상을 바닥에 깔고 단순함과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다. 즉 그 집은 이황 자신이란 현실과, 자신을 만들어주고 지탱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과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는 집이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집이다."

금산주택은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는 더 허름하고 더 단순한 평범한 집이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았으니 돈 들인 티도 나지 않고, 뭐든지 크지 않고 작은 미니 전원 살림집일 뿐이다.

하지만, 이 집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 검소함을 추구하는 작은 집의 가치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여러 가지를 묻는다. 그리고 집은 크기가 아니라 담긴 생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변치 않는 진리를 역설하고 있다.

구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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