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필자에게 주택구매와 관련한 문의가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집 장만에 나서야 하는지, 어느 지역을 선택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넓혀가고 싶은데 맞는 선택인지, 여러 채의 주택 가운데 어느 것부터 매도를 해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의가 끊일 날이 없었는데 2020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러한 문의는 거의 사라졌다.
주택구매 문의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작두를 타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급속히 상승한 주택 가격과 강력한 대출 규제로 인해 현실적으로 주택 구입이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전용 85㎡ 기준으로 10억을 넘는 아파트가 이제 보편적인 것이 되어가면서 대다수 주택매수 희망자들은 구매를 포기하고 대기자로 전환하고 있다. 상황이 맞지 않을 때는 쉬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이런 시기에 왜 과거에 주택을 구매하지 못하였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시험을 못 봤다고 시험지를 서랍에 처박아버리는 것보다는 씁쓸하지만, 오답을 찾아보고 왜 틀렸을까를 고민해보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자녀 등 대략적인 상황을 들어보고,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범위와 같은 가장 핵심적인 사항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략 몇 곳의 지역이 나오고, 그 지역에서 살펴볼 만한 곳을 알려주곤 했다. 대부분의 경우 지금은 좀 낮게 평가되지만 향후 전망이 괜찮아 보이는 지역이 대상이었다.
임장을 다녀오고 난 다음 다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필자가 모르는 사이에 변화한 사항들, 그리고 현장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 집을 장만하거나 넓혀간 사람들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주택을 장만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서울역 센트럴자이 전용 85㎡ 분양권이 6억 원 수준일 때 매수를 권유했지만 ‘그 동네가 무슨 6억 원’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5억 원대에 분양한 신길뉴타운의 래미안에스티움이 9억 원에 이르던 2018년 초반 최소 10억 원은 넘어갈 테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필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일어나는 경우를 접하기도 했다.
2015년경 식사 후 선유도 공원을 산책하다가 내 집 마련을 고민하던 주변 지인에게 당시 3억 원대 중반을 기록하던 양평한신 전용 59㎡ 매수를 권했다가 ‘어떻게 이런 동네를’이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센트럴자이는 이제 17억 원을 넘어서고 있으며, 래미안에스티움은 15억 원선에 이르고 있다. 양평한신의 경우 7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주택구매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 이들의 특징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왜 집을 장만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서있지 않은 경우다.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다. 자녀 양육과 교육을 목적으로 할 수도 있으며, 통근시간 단축을 목적으로 구매에 나설 수도 있다. 또는 완전히 투자의 관점에서 미래가치만을 보고 접근할 수도 있다. 목적이 불분명한 경우 여러 선택지를 놓고 긍정적인 면을 보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위주로 관전평하듯이 접근하게 된다.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의 주택을 장만할 만큼의 자금력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택구매는 포기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단점이 아닌 장점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장점이 내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투자로 접근하는 주택을 실거주의 관점에서 평가할 경우도 종종 있다.
둘째,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경우다. 집은 일반적인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손실을 봐서는 안된다고 하면 곤란하다. 양도세 등을 고려하였을 때 대부분의 주택구입은 최소 2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1주택 실거주의 경우 더욱 그렇다.
구매 목적에 부합하고, 실거주에 적합하다면 주택 가격의 단기적 변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로 그런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택 가격의 상승을 통한 이익은 해당 주택을 매도하였을 때 실현되기 때문에 사실 그 이전의 상승과 하락은 기분이 좋고 나쁠 뿐이지 당장의 경제적 상황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셋째는 눈이 너무 높은 경우이다. 자금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지역을 고집하거나, 신축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경우 주택구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 번에 계단을 올라가기보다는 적절하게 계단을 나눠서 올라간다는 자세가 필요함을 이야기하지만 한번 마음속에 정한 지역, 또는 새 아파트에서의 삶을 꿈꾸는 경우 설득은 쉽지 않다. 많은 경우 저러한 조건은 ‘or’가 아니라 ‘and’로 이어지면서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만들곤 한다. 서울 주택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강남 3구 또는 인서울에 대한 강박이 커지면서 스스로 선택의 범위를 줄이는 경우도 종종 많았다. 그 와중에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미사나 광교 또는 수원 화서 등은 무시되곤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일을 잊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피해야 한다. 변화한 상황과 현실을 인정하고, 여기에서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분명 그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선택지만 남아있겠지만, 그중에서라도 골라볼 것인지, 아니면 일단은 구매를 포기하고 시장을 관망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경우 의외의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엉뚱한 선택으로 후회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대출, 청약 등 관련된 정보를 꼼꼼히 챙겨 보는 것이다. 복잡하게 많은 제도가 변화했지만 세금과 관계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들은 의외로 변화의 폭이 크지 않다. 특별공급 대상 여부,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 등을 잘 파악하고 기억함으로써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주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같이 거주하고 있는 배우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맞춰가는 것이다. 일방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감안해보면 주택구매에 실패한 가구들은 이를 둘러싼 책임과 공박으로 감정이 상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나간 일에 대해 책임을 묻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다시 힘을 합해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자산 시장은 항상 흐름이 있다. 한 번의 흐름을 놓쳤다고 그다음의 흐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한 번의 흐름에 잘 올라탔다고 다음에 똑같이 잘 될 것이라는 보장 역시 없다. 상황에 맞춰 유연한 태도와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시장은 그런 연습과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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