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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촌으로 바뀐 서울 달동네들

리얼캐스트 입력 2018.02.09 09:38 수정 2018.02.09 09:39
조회 74431추천 25



┃서민들이 팍팍한 서울살이 이어가던 달빛 아래 ‘달동네’



‘달동네’란 도심 근처의 산비탈이나 산등성이 등 높은 지대에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말합니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는 판자촌이 있습니다. 남북 분단 이후 집 없이 쫓겨 내려온 실향민들이 산등성이에 나무조각, 베니어합판을 덧대어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높은 곳에 위치해 달과 가깝다 하여 ‘달동네’라 이름 붙여졌는데요. 고단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이웃간의 정이 넘치던 곳. 지금은 수십 년에 걸친 재개발 사업으로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정겨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1960~1970년대 산업화 영향, 달동네 폭발적 증가



달동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1970년대입니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도시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농이 본격화됩니다.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 자기 지역을 떠난 순 인구 이동량은 789만명으로 대부분이 이농 인구로 추정됩니다. 이는 1980년 총인구 3,743만명의 21%에 달하는 수치로, 전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거주 지역을 떠났다는 얘기입니다. 도시에서의 생활 기반도 돈도 빽도 없던 이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공장, 막노동, 행상, 노점 등 소득이 많지 않은 일자리가 대부분이었고,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도시 생활을 하기에 달동네 만한 동네가 없었습니다.  



┃1990년대 서울 달동네 75곳에 30만명 거주, 절반이 셋방살이



“방 한 칸, 두 칸짜리 집에 네다섯 식구가 사는 것은 기본일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맞벌이 나간 부모의 귀가를 기다리며 살았지만 대문을 나서면 같이 뛰어 놀 아이들이 있고, 이웃끼리 가족 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유년 시절을 서울 달동네에서 보냈던 L씨(47세)  


1991년 기준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달동네는 서울 20개구 총 12.5k㎡ 면적에 걸쳐 75곳이 분포하고, 총 8만 8,000여가구에 인구 30만 5,382명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 거주자 중 1인당 월 소득이 1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이 전체의 43%인 12만 9,000여명에 달했고, 거주자 중 절반 이상이 단칸 셋방에 거주했다고 하니 달동네의 생활여건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1990년대 서울 달동네 75곳에 30만명 거주, 절반이 셋방살이



부동산 시장에서 빈민층의 거주지로 저평가 받던 ‘달동네’는 서울 재개발이 본격화된 1990년대 숨은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게 됩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웰빙 열풍에 힘입어 그 동안 약점으로 꼽혀왔던 달동네의 높은 지대는 산과 한강 등 자연경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친환경 입지로 가치를 재평가 받게 됩니다. 도심과 가까운 탁월한 입지여건을 갖춘데다, 지하철 건설이 활기를 띠면서 서울 주요지역 대부분이 역세권 지역으로 바뀌게 된 점도 호재로 작용했죠. 판잣집을 허물고 산을 깎아 만든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촌과 다양한 편의시설이 생겨나면서 오늘날 서울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달동네에서 부촌으로 상전벽해 한 지역들



인기드라마 ‘서울의 달’ 촬영지였던 성동구 옥수동은 인접한 금호동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혔던 곳입니다. 산비탈에 판잣집들이 촘촘히 연결돼있어 자동차조차 다니기 어려웠던 이곳은 1990년대 초반부터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변화를 시작합니다. 종로 등 도심이 가깝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나라 최고 부촌인 압구정과 마주하는 탁월한 입지여건 덕분에 압구정동에 버금가는 부자동네란 의미로 ‘뒷구정동’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옥수동 12구역을 재개발한 ‘래미안 옥수 리버젠’ 전용 84㎡는 2011년 분양 당시 조합원들에게 5억원에 분양해 6년만인 지난해 12월 약 7억 5,000만원 오른 12억 5,000만원(13층)에 거래됐습니다. 



┃달동네에서 부촌으로 상전벽해 한 지역들 



산등성이를 따라 허름한 판잣집과 노후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공덕동 달동네는 2003년 2차 뉴타운으로 지정되며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현뉴타운은 서대문역이 불과 2km거리로 도심으로 봐도 무방한 입지에 아파트 1만 8,500가구와 도로,학교 등 기반시설이 함께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인접한 북아현뉴타운을 포함, 3만여 가구의 서울 도심 속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마포구의 집값 지도가 다시 그려지게 되는데요. 아현동은 국민은행 2일 통계 기준 3.3㎡당 3005만원을 기록하며 마포구 대표부촌으로 우뚝 섰습니다. 아현뉴타운의 대장주 아파트로는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부근에 대우건설,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3885가구 규모로 조성한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아현뉴타운 3구역을 재개발한 이 아파트는 2012년 84㎡를 3.3㎡당 1950만~2160만원에 분양해 올해 1월 10억 4000만원(9층), 3.3㎡당가로 환산해 3,125만원에 실 거래 됐습니다. 



┃달동네에서 부촌으로 상전벽해 한 지역들



관악구 봉천동, 신림동과 더불어 한강 이남을 대표하는 달동네로 꼽혀온 신길동 일대. 신길뉴타운으로 지정돼 개발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구역간의 개발 속도가 차이가 커 달동네의 모습과 새아파트촌이 함께 공존하는 진풍경을 자아냅니다. 철거가 한창이던 8구역∙9구역은 산비탈을 따라 노후주택촌이 넓게 형성돼있는데요.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거슬러올라간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신길뉴타운의 리딩 단지는 일찌감치 개발을 시작해 지난해 7월 입주를 마친 7구역 ‘래미안 에스티움’입니다. 전용 84.97㎡가 2014년 당시 조합원에게 5억 6000만원에 분양해 지난해 11월 8억(21층)까지 값이 뛰었습니다. 양도세 부담에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아 현재 거래가격이 9억 2500만원을 호가합니다. 



┃예전 달동네 사람들은 어디로? 달콤 씁쓸한 현실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 달동네를 재개발해 그 자리에 새로 조성한 대단위 아파트촌. 과연 원주민 중 그곳에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재개발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성동구 옥수동 달동네의 한 재개발아파트는 원주민의 비중이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강남 등 외지에서 모여든 투자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달동네 재개발을 두고 지역 가치를 끌어올리는 견인차라는 평가와 원주민들이 떠난 자리를 투자자가 꿰차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산실이라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자의든 타의든 개발 바람에 편승했다면 돈과 시간과의 긴 싸움에서 꿋꿋하게 이겨내야 달콤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진리.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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