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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땅이야기] 기울어져서 더욱 정이 가는 건축가의 집
두물머리님 작성글 전체보기 추천 2 | 조회 368 | 2020.07.10 09:47 | 신고

기울어져서 더욱 정이 가는 건축가의 집

건축가 아버지의 설계도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들에 의해 기울어진 집으로 완성됐다.

자가 모두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전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임창복 교수와 그의 아들 임동우 소장의 이야기다.

반듯한 네모 집이 아니면 어떤가

집을 기울여 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건물을 기울여서 남쪽을 향해 고개를 든 형상이 인상적인 이 건축물은 전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임창복 교수와 건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영분 명예 교수 내외의 집이다. 늘 네모반듯한 건물만 보다가 기울어진 집이라니 낯설고도 신선하다.

발상은 아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아들 임동우씨는 지난해 미국건축가협회 뉴욕 연맹에서 뽑은 '젊은 건축가'로 선정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건축 인재다. 미국 보스턴을 기반으로 한 설계사무소 프라우드(PRAUD)를 운영하고 있다.

아들은 어린시절부터 꿈꾸었던, 언젠가는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겠다는 소망을 실천했다. 설계 당시, 부모님은 이곳이 가족의 주말 별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인들과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공유하는 집이라, 공간 사용법이 신선하다.

아들 임동우씨가 먼저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실과 침실, 서재 등 각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살짝 기울이는 방법을 떠올려 19도를 기울여 봤습니다. 사람이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정면을 봤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안각의 최대치와도 흡사하죠. 조감도를 보면 집 상부에 기울어진 상자를 놓고 하부는 똑바로 세운 상자를 받쳐 세운 구조입니다."

기울여 건축한 집으로 들어가 봤다. 일반 복층 구조보다 1, 2층 사이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 아래에서 위를 봤을 때도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든다. 2층 서재에서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1층 벽면으로 영상을 쏘면 마치 소형 극장에 있는 것 같다.

집안에서 만난 임창복 교수는 이곳의 이름을 짓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조선 시대 퇴계 선생이 벼슬을 지내기보다 후학을 위해 고향으로 가 제자들을 데려다가 학문을 가르쳤던 도산 서당을 떠올렸습니다. 이곳을 현대적 의미의 도산 서당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임창복 교수는 자신의 호인 '임수복헌'에서 '수헌'이라는 이름을 가져오고, 많은 이들이 모여 학문적 교류를 나누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정 亭'을 붙여 '수헌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1.  한옥 느낌으로 연출한 침실. 창문에 걸러져서 보이는 자연의 모습이 마치 프레임 속 한 폭의 그림 같다.

에디터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단풍이 절정이라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2.  1, 2층이 개방된 형태라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간층은 두 교수 부모님의 서재이고 1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있다.

한국의 살림집 한옥처럼

수헌정 내부는 밝고 아늑하다. 아들은 따뜻한 느낌이 나길 바라는 어머니의 의견에 따라 아이보리 빛깔로 내부 벽면을 채웠고, 곳곳에 나무 소재를 활용했다. 또 간접 조명을 사용해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헌정 내부는 따듯했고, 어디든 앉아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임창복 교수가 답한다. "기울어진 건물의 사선 부분을 보면 처마 너머로 산을 바라보는 느낌이 듭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깥 마당에 나가 앉아서 햇볕을 쬡니다. 마치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 피고 지는 자연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 부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한옥 느낌을 구현했다는 점이 만족스럽습니다."

3층에 있는 침실엔 사람의 시선 높이에 맞춰 창호 형의 창문을 달았다. 바닥에 앉아 있으면 병풍처럼 펼쳐지는 청풍명월이 그대로 눈에 담긴다. 혹자는 이곳을 찾아 '이렇게 풍경이 좋은데 왜 통유리 창을 내지 않았냐'고 묻곤 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임창복 교수는 더 큰 감흥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바깥을 볼 수 있고,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집의 어느 한 곳은 꼭 통유리 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다 보고 나면 상상력이 생기지 않아요. 감흥이라는 게 없잖아요. 작은 창을 통하면 더욱 바깥을 바라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창틀이 하나의 그림 프레임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한옥에서 처마를 걸고 쳐다보는 하늘이 멋지듯, 우리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전망도 멋지지 않나요."

서재 아래 응접실 공간은 수헌정에서 유일하게 큰 유리창이 있는 곳이다. 남향이라 오후 내내 따뜻한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기울어진 집으로 모이는 가족들

효자, 효부들의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들리지 않는다. 세상살이가 팍팍한 탓이리라. 임창복 교수의 집을 둘러보며,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의자 하나를 놓는 데도 아버지가 불편하지 않도록 야트막하게, 풍경 감상하길 즐기는 어머니를 위해 창을 내면서도 그림처럼 만들어둔 아들의 정성이 맘에 와 닿는다. 이곳에서 임창복 교수 부부는 색색의 빛을 뽐내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된 지금까지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새가 우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달이 변하는 모습 등 잊고 지냈던 자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집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 했다. 임창복 교수는 차 한 잔을 권했다.

"여기서 지낸 지 얼마 안 됐을 때 비가 온 적이 있어요. 징크로 된 천장에 타닥타닥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음악 소리 같더라고요. 아파트에 있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할 소리였겠죠. 저 멀리 청평 호수도 옅게 보이고, 산세가 활짝 펼쳐진 이곳은 마음까지 여유롭게 만듭니다."

얼마 전엔 출가한 딸과 해외에 거주하는 아들까지 오랜만에 온 가족이 수헌정에서 모였다. 임동우 소장이 학술 대회 일정 때문에 한국에 머물렀던 근 2개월 동안 누나도 매형과 조카들을 데리고 종종 왔다. 조카들은 정원에서 비닐로 된 수영장을 만들어 놀고, 다음에 오면 텐트를 쳐달라고 조르며 뛰어놀았다.

서울에서 지낼 때는 가족들이 집보다는 레스토랑에 모일 때가 더 잦았다. 수헌정을 지은 뒤부터는 가족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아들 임동우씨는 아버지의 꿈은 곧 가족의 꿈이었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언젠가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생각을 하신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꿈이 실현된 셈이죠. 제 이름을 걸고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집이 부모님을 위한 곳이라서 뿌듯합니다. 이 공간에서 가족들이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어 더 좋습니다."

1. 19도 기울어진 건물 외관을 따라 산등성이가 보이는 전망은 마치 처마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2. 마당 쪽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지하 공간은 게스트룸으로 만들어

손님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3. 남향으로 난 창 앞으로 몬드리안 작품을 연상케 하는 리트벨트 의자가 놓여 있다.

햇볕을 받으며 생각하기에 좋은 자리다.
여성중앙 / 기획_박주선 / 사진_이과용(brick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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